4자회담이 제의된지 한달이 넘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은 (전쟁)억제(deterence)라는
개념을 한반도 안정보장의 핵심전략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북한은 힘을 잃고 있는데 반해 남쪽은 너무 막강해져
균형이 깨져 버렸다.

균형상실로 전쟁가능성이 오히려 증가됐다는 지적이 크게 일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따라서 북을 도와 깨진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냉전구조가 와해된 이후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과 구소련등 후원자 상실로
극도의 불안한 심리상태하에 있다"고 지적하고 한반도의 균형과 안정이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레이니 대사는 또 "4자회담을 출발점으로 절망에 빠진 북한을 "도와"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며 남쪽의 적극적이고 시혜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한반도의 안정과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억제정책"을
넘어서는 긍정적으로 현실에 접근하는 대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
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대북 접근방식을 인정하면서도 대북한 경계심을 절대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경계론은 북한이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신중론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 강경노선으로 정리될 수 있다.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

그는 바로 이러한 경계론과 신중론을 동시에 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순진한 대북 접근방식은 금물"이라는게 릴리 전대사의 북한관이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의에 참석차 방한한 그를
본사 양봉진 국제부장이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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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아시아소사이어티회의 연설에서 이제까지 한반도
평화는 억제정책에 의해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레이니 대사의 주장에 허점은 없는가.

<> 제임스 릴리 =합리적이고 현명한 대북 접근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한게 있다.

북한이 과연 이쪽의 진정한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어떻게 하면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이 뜯어낼수
있을까에만 골몰하고 있다.

교활하다할 정도다.

남쪽은 경제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지만 경계의 고삐를 늦추어선 안된다.

과거 구소련이 심각한 식량부족사태를 겪고 있을 때 미국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경계를 풀진 않았다.

식량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철저한 확인(verification)과정을 거쳤다.


-한국도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그런 검증과정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북한에 지원된 쌀이 군사적인 용도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미인가.

<> 제임스 릴리 =그렇다.

북한의 군량미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팀을 파견했다 하더라도 50~70%밖에 체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은 구소련과 다르다.

구소련보다 더 폐쇄적이기 때문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본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일종의 투자행위와도 같다.

북한은 쓸데없이 3억달러나 들여 능라도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식량을
구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신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북한의 식량지원요청에 미국이 응할 것이라고 보는가.

<> 제임스 릴리 =물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휴전선에서의 신뢰구축과 재래식 무기감축 등을 지원대가로
받아내야 한다.


-지난 4월 김영삼대통령이 제안한 4자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전망은.

<> 제임스 릴리 =한국 미국 일본 심지어 러시아까지도 원하는 제안이다.

중국도 4자회담이 성사되길 바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4자회담은 매우 의미심장한 제안이다.

특히 휴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포함돼 아무런 하자가 없다.

북한은 현재 심리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태다.

북한정권은 권력유지를 통한 생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북한은 지난 40여년동안 한국을 격하시켜 왔다.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그들의 숨은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군사적 도발행동이 어리석은 것임을 분명히 확신시켜 줘야
한다.

경제파탄 국제적인 고립외엔 가진 것이라곤 살상 무기밖에 없다.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한 정권이다.

그간 한국과 미국이 취해온 억제정책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받고 난 후엔 이미 때가 늦는다.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사가 이를 말해준다.

북한에 대한 원조도 남북한간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4자회담에 대해 북한은 아직까지 잠잠하다.

이것 저것 재면서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언제 그들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으로 보는가.

<> 제임스 릴리 =북한은 이번 제안에 대해 일종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미군실종자 유해발굴 협력과 관련, 얼마의 돈을 받아낼수 있을까 계산해
보는등 가능한한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지난번 미군 헬기 추락조종사 송환문제도 그렇지 않았는가.

이쪽에서 반대급부를 주자 조종사는 금방 송환됐다.


-러시아는 이번 4자회담 제안에 대해 마지못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러시아의 심기는 불편하다는게 외신의 전언이다.

공로명 외무부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러시아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앞으로 2+2구도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제임스 릴리 =러시아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북한에 군사무기제공 등을 통해 한반도문제에 항상 개입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도 북한에 제공할 것이 바닥난 셈이다.

고르바초프가 제주도까지 와서 한국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북한에 물건을 팔거나 지원해도 북한은 러시아에 줄 것이
없다.

외화도 벌어 놓은게 없으니 북한은 당연히 러시아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북한은 다급해 중국에 손을 벌렸다.

중국엔 북한이 원하는 석유와 쌀과 무기까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북한은 러시아보다는 중국과 튼튼한 연결고리를 만들게 됐다.

러시아는 휴전협정조인국도 아니다.

어정쩡한 입장인 셈이다.

러시아는 한반도가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번영을 구가하길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4자회담이 제시된 이후 중국은 자못 흡족한 모습이다.

러시아와 일본을 따돌렸다는 느낌도 있을 것이고 극동지역, 특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중국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제임스 릴리 =중국은 회담을 통해 한반도문제에 깊숙이 개입, 영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입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나 한국과 마찰을 빚길 원치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그러한 중국과 협력관계를 다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비록 중국이 이번 회담제의를 두고 합당하고 무리가 없다고 표현
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할 것이다.

KEDO에 미국 등이 40억달러를 지원했을때 중국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미국이나 한국이 그리 현명한 협상전략을 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본다.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제임스 릴리 =수요-공급 법칙이란 경제논리를 원용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북한에 공급하면서 외화나 아니면 동일한 값어치의
물품등 상응한 대가를 바랄 것이다.

주는만큼 받으려 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유시장원리를 도입, 농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룬 자신들을 모델로 삼길 북한에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중국은 북한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경제특구를 보여줬지만 그결과
가라오케 등과 같은 자본주의의 폐해만 심어주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집단화을 해체하고 사유화를 추진하라는등 농업부문부터
시작하라고 북한에 계속 압력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 나선다 해도 그들의 대화상대자로 미국을 고집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노릴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응할 것으로 보는가.

<> 제임스 릴리 =미국이 그렇게 나온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 중국이 협력
해야할 포괄적인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독자노선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있다.

한 예로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은 확고한 협력관계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았는가.

북한으로부터 NPT(핵확산방지협정)준수, 영변핵사찰, 비핵화선언과 남북한
화해협정 등을 얻어냈다.

한동안 남북한 대화도 이뤄졌고 중국도 한국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김일성의 사망으로 이어지고 김정일이 정권을 잡게 돼 대화가 중단
됐지만.


-한반도문제에 있어 일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나.

한반도 문제의 대화당사국 대열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은 아닐 텐데.

<> 제임스 릴리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총련이 일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후방 자금지원줄이다.

매년 수억달러에서 수십억달러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자금줄을 끊으면 북한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조총련의 북한 송금은 바로 일본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다.

북한은 또 일본으로부터 과거 한반도침략에 대한 배상금을 노리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교활하게도 일본을 적으로 간주하며 한-일 한-미 미-일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내 조총련도 북한에 대한 충성심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에 송금되는 자신들의 돈이 군비로 흡수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조총련도 있다고 본다.


-귀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대화를 함에 있어
장시간 인내해야 되는 도리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 제임스 릴리 =레이건전대통령은 대러시아정책과 관련, 상호신뢰가 실제
얼마만큼이나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행동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의 행동을 신뢰할 수 있다고 증명하긴 어렵다.

아주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 정리=김홍열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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