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의 전방위 생산시대"

한국 반도체업계가 올들어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의 힘찬 패달을 밟기 시작
했다.

국내에 집중돼 있는 일관생산기지를 해외로 넓히기 시작한 것.

지역도 동남아 중국 미국 영국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한 한국 반도체를 5대양 6대주에서 쏟아내 "세계의
반도체"로 키우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현대전자는 올초 미국 오리건주 유진시에서 반도체 공장 건설의 첫 삽을
떴다.

이 공장은 한국 반도체업계의 해외 첫 일관 생산기지다.

현대는 내친김에 미국 동남아 유럽 등에 오는 2000년까지 5개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도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에
나섰다.

지난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16메가D램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오는 2003년까지 이 지역에 추가로 공장 두개를 증설한다.

중국 소주에도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고 오는 7월 기공식을 갖는다.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선 영국 윈야드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LG반도체 역시 동남아와 유럽에 생산기지를 구축키로 했다.

말레이시아엔 일본 히타치와 합작해 64메가D램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영국엔 256메가D램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 현대 LG뿐아니라 조립업체인 아남산업도 생산체제를 다국화하고 있다.

아남은 필리핀에 공장을 추가로 건설해 이 지역에만 4개의 생산기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 93년 인수한 CIS(옛 소련)의 민스부르크 공장도 올해말부터는 본격
가동키로 했다.

이밖에 이스라엘과 대만에도 반도체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이처럼 해외생산기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세계를 무대로한 소비자 중심 생산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소비자 지향의 생산 마케팅 전략인 유저 프렌드리(user friedly)전략을
구체화 하겠다는 것.

사실 세계 반도체 산업은 극심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대표적인 게 수요업체의 공급기간 단축 요구다.

"불과 2~3년전만해도 납기일은 보통 두 달이 넘었다. 그러나 최근엔
1주일도 길다고 아우성치는 수요업체가 많다"(삼성전자 관계자)는 것.

결국 수요업체가 요구하는 기간안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선 수요자 근처
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이 나온다.

유저 프렌드리는 납기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마케팅분야에서 더 유용하다.

반도체의 주수요처는 컴퓨터등 기술발전속도가 빠른 첨단산업이다.

따라서 수요제품의 기술적 추세를 반영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수요업체들은 자신들의 요구대로 생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발주를 하지 않는다. 이런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은 반도체공장을 직접
보도록 하는게 최선이다"(김영환 현대전자 미국법인사장)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수요자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공장을 지을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의 또 다른 이유는 연구개발의 효율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반도체 개발추세는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제품이 여러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반도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완성품 메이커들은 완제품의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반도체를 원할 수 밖에
없다.

완성품 메이커들과 반도체 업체가 공동 연구개발체제 구축을 선호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생산공장에는 연구개발센터가 같이 세워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
수요업체와 공동개발 체제를 구축하기가 쉬워진다"(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
부회장)

또 다른 이점으로는 미국등 해외업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역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수요업체가 있는 나라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하면 내수판매이기 때문에
무역분쟁은 원천적으로 방지될 수 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업계의 세계 석권 전략은 생산기지의 세계화에 그치지 않는다.

양적 개념이 아닌 "질적인 세계화"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민관합동연구기관인 세마테크가 주도하는 차세대
웨이퍼 규격제정 작업에 참여키로 했다.

세마테크는 반도체에 관한한 미국의 최정예 R&D인력이 집결한 연구소다.

삼성은 이곳과 차세대 웨이퍼의 규격을 함께 정함으로써 메모리 정상의
위치를 지속시킨다는 계산을 갖고 있다.

LG반도체는 미국 선사와 손잡고 최근 인터넷 언어의 업계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자바언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반도체로 만들기로 했다.

자바언어란 인터넷의 각종 프로그램을 만드는 특수기호다.

이 기호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별도의 해석장치와 이
장치를 가동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LG는 이같은 불편을 없애기 위해 언어자체를 반도체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

LG는 이밖에도 세계 20곳에 R&D센터를 세우는 글로벌 연구기지화 프로젝트
를 착착 진행중이다.

삼성과 현대는 이밖에 주요 수요업체와 메모리반도체의 장기공급계약을
맺었다.

세계 PC시장에서는 적어도 오는 2000년까지는 한국 메모리반도체가 지속적
으로 팔릴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셈이다.

결국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양과 질"의 양면에서 세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짧은 역사속에 그것도 미국과 일본업체들의 끈질긴 견제를 받으면서도
이뤄낸 "기적"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화의 기치 속에서 제2,제3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