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여름방학때 필자는 지리산을 처음 등산하였다.

선생님을 따라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천왕봉, 백무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약 70km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코스였다.

15세 어린나이로 5박6일의 지리산 등산은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며
특히 그 당시 등산 장비란 모두 군용품이여서 매우 무거웠다.

그때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큰 산을 다녀왔다는 자부심 하나로,
필자는 어느덧 전문산악인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휴일이면 동료직원들과 함께 유명산을
찾아 등산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틈틈히 지리산 등산을 하였다.

필자는 겨울 지리산을 매우 좋아한다.

바쁜 직장 생활속에서도 눈이 많이온 겨울이면 매년 빠짐없이 지리산을
올랐다.

반야봉과 천왕봉을 중심으로 환상의 코스를 개발하였으며 직장 동료들과
함께 겨울 산행을 준비하고 눈속에 묻혀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더불어
나누어 왔다.

드디어 지난 91년 겨울에 직장동료들과 함께 험난 하기로 이름난
칠선계곡을 다녀 왔다.

백무동을 출발하여 산중턱에 이르자 벌써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기온은 영하 18`C에다 눈앞이 보이지 않은 눈보라가 몰아쳤다.

장터목 산장에 어렵게 도착하여 숙박하였으나 도저히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수통속에 있던 물이 꽁꽁 얼어 있었으니 상상을 초월한 겨울밤이였다.

아침 일찍 산장을 나왔으나 매서운 눈보라에 머리를 들수가 없어
그저 발끝만을 보고 걸었고 평소 3배나 되는 시간을 소요한 후에야
천왕봉에 오를수 있었다.

곧이어 칠선계곡으로 서둘러 하산하였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등산 코스중에서 가장 험하고 하산하는 시간만해도
6시간이상 소요되는 난코스이다.

그때의 산행은 필자가 다녀본 등산중 가장 어려웠고 또한 제일 보람찬
것이였다.

지금도 그때 함께 등산 했던 직원들을 보면 정말 강인한 정신력에
감탄하였고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을것 같은 믿음이 든다.

직장인들은 항상 운동 부족 때문에 책상 설합에 영양제를 듬뿍 넣어두고
근무한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운동부족으로 여러 가지 질병에 고생하는 도시인들,
또한 요즈음 신입사원들은 산에 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이런 분들에게
겨울산행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기성세대들이 후배들에게 산행을 권장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의 경우 직장내 야유회를 갈때면 가급적 유명한 산을 등산 하도록
유도해 왔다.

이렇게 해서 등산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고
또한, 추억과 낭만이 깃들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산행을 통해 서로간에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함으로써 직장
분위기를 활성화 할 수 있어 직장인들의 단체 등산을 권장하고 싶다.

80년대에는 직장인들의 등산활동이 매우 활발하였으나 요즈음 약간
시들해진 느낌이 들어 산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 아쉬움이 많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가끔 자녀와 함께 등산하는 아버지들을 불 수 있다.

참 부러운 가족임에 틀림 없고 저아이들이 성장하면 필자보다는
더 산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장하다!, 몇살이니?"
하는 격려의 말을 꼭 해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