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희 < 서부산업 사장 >

수입에 의존해 오던 개인 어학실습장비를 지난 85년 "닥터위콤"이란
브랜드로 국산화하는데 성공, 연간 수천만달러 상당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

이 제품이 나오면서 각종 어학실습장비의 수입이 원천봉쇄됐다.

현재 단일상품으로 연간 2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등
세계 10개국 이상에 관련기술을 특허출원함으로써 우리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외국어교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 기여했다.

발명의 핵심인 문장선택 자동반복 구간반복 일대일대화등의 기능은
선진각국이 개발한 어학실습장비의 메카니즘을 근본적으로 혁신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기능은 컴퓨터, CD롬드라이브, CD-I등의 기본적인 외국어 학습기능으로
채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등 새로운 외국어학습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완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업체로 150여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외에도
전자부품 생산업체, 기타 부자재 생산업체등 관련업체의 직접고용이나
판매사원등 수천명의 고용창출효과를 유발했다.

특히 개인발명가와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발명을 통한 기업성공의 모범적
사례도 남겼다.

70년대초 어학실 시스템을 국산화해 100여개 학교에 설치하기도 했으나
활용빈도가 낮아 개인당 학습능률을 올리는데 효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문장자동선택 반복, 일대일 대화등 특허기능을 덧붙인 개인
(휴대용)어학실 "닥터위콤"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제품이 빛을 보기까지 필요했던 과다한 투자비를 끝까지
감당해낼 여력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금융기관 마저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제품개발 1년만이 86년 부도를 맞았다.

부도 즉시 침구를 공장에 옮기고 종업원들과 합숙하며 재기를 노렸다.

발명제품의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급료도 받지못했던 종업원들도 일치단결했다.

그 결과 7개월이나 밀렸던 급료를 지불할 수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이후 법정관리로 순조롭게 이행, 새로운 탄생의 기초를 착실히 다져나갔다.

88년 서울올림픽 통역안내원 단기교육에 닥터위콤이 활용됐고 스페인
국왕근위대도 닥터위콤을 들여다 어학실습실을 꾸몄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호주 멕시코 브라질등 해외의 교육현장에서도
외국어교육에 가종 효과적인 학습기로 인정돼 설치가 늘어갔다.

국내에서도 개인소비자를 중심으로 주문이 밀렸다.

때마침 일기 시작한 외국어학습열풍 덕택이었다.

그 결과 매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투자비부담으로 인해 어쩔수 없었던 부도사태와 잇따른 법정관리이후
8년만에 완전히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91년이후 지난해까지 특허기술을 채택한 8개품목의 국내매출은
246억9,700만원, 수출은 18억5,000만원에 달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수발명창안에 헌신하고 있는 발명가들은 물론 자본과
설비가 취약한 중소기업인들에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적 사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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