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이 장기안정세를 유지하고있다.

부동산의 기초재료인 토지가격이 전반적으로 안정돼있는 것은 물론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가격의 오름폭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때 주요 투자대상으로 각광을 받던 상가는 미분양이 심화되면서
기본 수요층조차 대거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최근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으나 아직도 누적물량이
12만가구를 넘는다.

아파트 미분양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지방도시에선 신규아파트 분양가가
기존아파트 매매가를 초과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있다.

이같은 현상들은 "사두면 언젠가는 가격이 오른다"는 부동산 신화가
이제는 끝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신 부동산이 단순 투자대상에서 개발이나 이용의 대상으로 바뀌고있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안정은 투기차단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크게 강화된데서
비롯됐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부동산전산망 가동으로 부동산 거래 실태가 낱낱이 파악되는데다
부동산실명제 실시로 소유의 투명성까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국은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을 보이면
가차없이 투기우려지역으로 지정, 거래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

강도 높은 제도적 장치가 가수요를 억제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에따라 부동산시장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아파트를 비롯해서 임야 나대지등 가공되지않은 단순부동산이
주로 거래됐다.

이들 물건을 확보, 일정기간 묻어두었다가 되팔면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같은 단순투자가 크게 퇴조하고 있는 추세다.

부동산을 일단 사두었다 해도 금융비용을 빼면 별로 남는게 없는데다
각종 세금 때문에 "보유"에서 오는 부담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특히 아파트등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부동산의 환금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버렸다.

토지나 임야같은 단순상품은 값을 아무리 싸게 내놓아도 필요할때
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땅부자로 소문났던 일부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것도
"보유만으론 재산가치가 없다"는 부동산시장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같은 여건아래서 부동산을 통해 재테크를 하는 방법은 투자개발및
최유효활용으로 제한될수밖에 없다.

면밀한 시장예측과 입지분석, 새로운 판촉기법을 동원한 기획개발등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에따라 낡은 단독주택을 헐고 임대용 건물을 새로 짓는다거나
준농림지를 매입, 전용을 통해 주유소나 전원주택을 건립하는 방법등이
효과적인 부동산개발의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용적률을 극대화, 건물면적 늘리기에 주력하는 마구잡이식
개발보다는 용적률이 낮아지더라도 개성이 있는 건물을 짓는 쪽으로
개발방향이 바뀌는 추세다.

또 여유자금을 갖고 미분양아파트를 매입, 임대사업자로 등록한후
임대사업을 벌이는 것도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불리는 방법의 하나로
꼽히고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의 경우에도 전처럼 부동산중개업소의 조언을 받아
특정지역에 무작정 투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추진 상황을 분석하고
투자시기와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 선별투자하는 방식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엔 일부 계층들만 관심을 가졌던 경매가 일반인들 사이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도 달라진 부동산시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원룸주택, 테마상가, 특징있는 주상복합건물, 호텔식 오피스텔등 부동산
신상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요즘 부동산시장의 특징이다.

원룸주택은 등장한지 불과 2년여만에 주요 부동산 상품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테마상가는 최근 그 수가 불어나는 것은 물론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는 추세다.

분당의 "테마폴리스", 구의동의 "테크노마트", 구로동의 "중앙유통상가"
등은 매장면적이 수만평에 이르는 초대형 테마상가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 역시 고급화 개성화되고 있다.

주상복합건물 가운데에는 한 건물안에서 주거뿐 아니라 취미생활 사무
쇼핑까지 가능한 것들도 선보이고 있다.

또 관리에서부터 룸서비스까지 호텔과 비슷한 오피스텔이 등장, 주목을
받고있다.

사회가 전문화되고 계층별 수요가 분화되면서 부동산시장의 전문화 내지
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1~2년사이 부동산시장에 개발전문업체나
부동산컨설팅업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소규모 부동산에서부터 대형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부동산
시장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제 특징이 없는 부동산 상품은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역으로 부동산시장에서 묻어놓기식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치밀한 전략과 시장분석을 통해 부동산을 개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 수요자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제공해야만 수익을 남길수있는
"부동산테크"시대가 온 것이다.

< 이정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