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

오늘날 기업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제전쟁의 최일선에 서있다.

어느 기업이나 보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초를 다투는 경쟁에
임하고 있다.

기업들만이 경제전쟁에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를 보다 매력적인 투자장소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고비용 체질을 저비용 체질로 바꾸기 위해 탈규제와 작은
정부,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통해 외국기업의 유치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것이 21세기를 대비하는 각국의 지상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 나라에는 작은 정부와 탈규제라는 구호는 요란한데도
불구하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정부는 공정거래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선의의 규제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그럴듯한 정책목표에도 정책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 기업활동을 제약할뿐만 아니라 위헌적인 소지를 가진 정책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정책목표가 너무 앞선 나머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들이
아주 많다.

먼저 공정거래위원회가 내세운 몇가지의 정책방향을 살펴보자.

엄연히 수십년간 내려온 금융관행이 빚보증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계열회사 사이에 빚보증을 금지하는 정책이 나왔다.

과연 공정위가 기업현실을 잘 알고 내놓은 정책인지 궁금하다.

뿐만 아니라 독립 법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적 계약에 정부가 개입할수
있는지, 위헌적인 소지는 없는지 의심이 든다.

또한 공정위는 부당내부거래에 대한단속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내부거래에는 경쟁촉진적인 내부거래가 있는 반면에 경쟁억제적인
내부거래도 있다.

때문에 굳이 부당 내부거래라 하면 경쟁억제적인 내부거래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다양한 내부거래의 유형이 충분히 연구되거나
검토되지 않았다.

단속을 강화하기 이전에 우선 필요한 것은 부당거래에 대한 유형화 작업이
충분히 진행되고 이에 대한 정보공개를 통해서 기업들이 스스로 관행을
고쳐나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성급하게 단속을 앞세우는 것은 공정위에 필요 이상의 자의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몇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표소송을 제기할수 있는 소액주주권의
요건을 현행 5%에서 1~2%로 낮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사회는 생산자위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나 투자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대원칙에는 동의하나 이처럼
소액주주권의 한도를 대폭 낮추는 정책은 우리 사회를 소송이 만연하는
사회로 한 걸음 다가가게 할 것이다.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소송과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자원이 많은
소요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으로 정부는 사이사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의 의도는 우선 공기업에 실시한 다음 그 성과를 보아가면서
사외이사제의 상장요건화를 추진할 의중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미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제도를 사전에 충분한 검토도
없이 수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일구조조정협의에서 사외이사제 도입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일본이 물리친 전례를 상기해야 한다.

이미 국내에는 몇몇 그룹들을 중심으로 시범적인 사외이사제가 실시되고
있다.

그 성과를 보아가면서 민간기업들이 저마다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리라고
본다.

사외이사제를 일률적으로 입법화하는 것은 성급할 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극히 의문시된다.

다음으로 상장기업이 대주주 등에 대해 대여금이나 담보제공시 주총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상장기업이 특정 주주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가지급금, 대여금및
담보를 제공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공법이 사법의 영역에 개입할수 있는 소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업자산의 전용 등에 따르는 것은 결국 이해당사자간의 문제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다수의 대표성을 가지는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감시 감독할 사안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분야는 아니다.

끝으로 경영권에 대해서 상속세를 부과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부과에 있어 비상장주식중 지배주주에 대한 할증평가
규정을 상장주식에 대해서도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경영권을 재산권의 일종으로 간주하여 세금을 물리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경영권이란 주주에 의해서 위임된 것일 뿐이다.

이것 역시 정부 개입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목전에 OECD가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각종 규제를 국제적인
수준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차별적이고 위헌적인 입법을 예사로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역시 법치주의로부터 결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님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