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가 심각하다.

4월의 무역적자만 해도 20억달러인데 한달 동안 적자로는 사상 최대
기록이다.

올 들어 무역적자규모는 이미 58억달러를 넘어섰는데 이것은 연간 목표인
70억달러에 거의 육박한 수준이다.

무역수지적자의 누적과 함께 산업생산증가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문제가
크다.

정부가 발표한 생산증가율은 1월 12.4%에서 2월에는 8.1%, 그리고 3월에는
5.8%로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의 견인차인 산업생산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물가전망도 불투명하다.

지난달말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9%로 집계되어 숫자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경기침체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다.

특히 경기양극화가 심화되어 서민경제의 타격이 큰 상태에서 피부물가
지수는 10%를 상회한다.

더욱이 국제원자재 가격이 지난해말부터 상승하고 있는 데다 교통요금과
개인서비스요금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또 7월부터는 석유와 담배에 20%의 교육세가 부과되어 그만큼 가격인상
부담이 커졌다.

현추세로 나갈 경우 우리 경제는 성장은 둔화되고 물가불안은 확산하는
전형적인 구조적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9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아시아의 4마리용에서 탈락하였고 아직 회복을
못하고 있다.

또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압박을 받고있다.

이번에 우리 경제가 난관을 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더욱 멀어질수
있다.

현 상태에서 정부가 설정한 경기연착륙궤도에 과감한 수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총선에 앞서 무역수지적자를 흑자로 발표하는 등 경기에 대한
억지낙관론을 펴 왔다.

정부가 낙관론을 반복하여 치유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경제는 좌초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현실성에 입각한 정직한 정책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무역적자의 누적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일본엔화의 약세이다.

작년초만해도 1달러에 80엔수준이던 엔화가 최근 들어 106엔을 기록하는
등 30%이상이 절하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상품의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우리경제로 하여금 9%이상의 고도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반도체와 철강등 중화학공업제품에 대한 경쟁력상실로 무역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의 국제가격이 3~4개월 동안 40%이상 하락하는등
중화학공업제품의 수출가격이 급격히 하락하여 수출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최근 무역적자 누적과 산업활동의 위축 현상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해외의존도가 국제여건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의존도가 높아 일본엔화가 조금만 변화해도 엄청난 충격을
받는 허구성을 노출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산업정책이 외형위주로 무조건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온 것이 잘못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서 이러한 산업정책의 기본골격은 세계화의 명분하에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국적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고부가가치산업을 발전시켜 대일 예속을 탈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경제여건 변화에 전천후적인 체질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은 규모위주의 조립형산업 발전정책을 지양하고 전문화와 특화위주의
고부가가치 산업발전정책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적자생존이라는 무책임한 논리로 중소기업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펴 산업고도화의 저변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서 행정규제를 완화하고 고비용구조를 개선하여 기업투자활동을
제고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결국 정부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허구성을 인정하고 정책의 틀을 과감히
바꾸어 자립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

무역적자 누적과 산업생산증가율 하락에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원화의 강세이다.

엔화는 계속 하락하는데 원화는 강세를 보여 이중고를 주고 있다.

원래 무역적자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수출수요감소로 원화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수출경쟁력을 증가시키는 시장조정능력이 발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가 강세를 유지하며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무모한 금융개방에 따른 투기자본 유입때문이다.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들어와 원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화수요가 늘어나
절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총선을 의식하여 외국인 주식투자한도를 늘리는등
정책의 오류가 있었다.

앞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외국투기
자본에 의한 국내경제 피해는 멕시코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치명적일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수입에 있어서도 문제가 크다.

작년 동기에 비해 수입증가율은 3월에 4.2%에서 4월에는 14.8%로 급격히
치솟았다.

문제는 수입상품의 내용이 작년에는 시설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올해는
소비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는 자동차 수출에 고전을 하고 있는데 외제자동차
수입이 4월에 93% 증가했다.

또 국내 이동통신산업이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외제 휴대용전화기 수입은
730%나 늘었다.

경제는 수출경쟁력을 잃고 추락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외제품 소비 축제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선거후 통화환수를 하지 않는등 정부의 팽창정책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정부는 소비재 수입을 가급적 억제하고 국산품을 사용하는 소비풍토 마련에
최선의 정책적 접근을 해야한다.

물론 기업들은 품질을 향상시키고 애프터 서비스를 강화하여 소비자들의
국산품 선호도를 높여야 한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재정팽창을 막아 검소를 솔선수범하고 통화운영의
안정기조를 정착시켜 물가불안을 차단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