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신노사관계구상"을 구체화할 노사관계 개혁위원회가
9일 공식 출범, 활동에 들어갔다.

그동안 이해집단간 의견대립으로 주춤거려왔던 이른바 "노동개혁"에
비로소 시동이 걸린 것이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21세기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마련,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개혁작업을 주도하게 된다.

개발연대이후 지속되어온 노사관계의 의식과 행태, 제도와 관행, 그리고
노동관계법과 노동행정등 전부문에 걸쳐 대수술을 단행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재계와 노동계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순탄지 않을 것같다.

벌써부터 재계와 노동계가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며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고
노동계 내부에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사안들이 많다.

김영삼정부가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눈치를 살피다
보면 정치논리가 끼어들어 위원회의 발족취지 자체를 흐릴 소지도 없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선진노사관계를 구축하기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벌여온 미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클린턴행정부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겨냥, 인적자원개발과 노사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 93년 4월 "노사관계 미래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일명 "던롭위원회"로 불리는 이 위원회는 지난 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조합의 법적지위를 크게 강화시킨 와그너법의 제정이후 최대의
노동개혁작업을 벌이게 된다.

미국내 노동계와 경제계의 관심이 집중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던롭위원회는 광범위한 현장조사와 공청회등을 통해 94년 5월에 발표한
중간보고서에서 자국내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광범위하게 파헤쳐 사안별로
꼼꼼한 개선방안들을 제시, 호평을 받았다.

종업원참여제(EI)의 확대를 통해 근로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해야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골자.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수집한 현장조사자료와 관련단체의 의견서등
서류만 대형트럭 네대분이었다고 하니 그 열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던롭위원회의 개혁구상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지난 94년 11월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 이듬해
2월 민주당측이 상원에 상정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간단히 부결돼 버렸기
때문이다.

2년여동안의 노력이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던롭위원회의 실패는 또 있다.

초창기 참신했던 개혁구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돼 노동계와 재계
어느쪽으로부터도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어정쩡하게 침묵을 지키는가하면 이해당사자의
반발에 부닥쳐 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종종 이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던롭위원회는 발족초기 폭넓은 현장실사와 합리적인 비전의 제시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해관계조정과 사회적합의의 도출에 실패한데다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좌초하고만 셈이다.

우리의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도 얼마든지 이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던롭위원회의 실패를 거울삼아 왕성하면서도 신중한 활동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수 있는, 타당하고
설득력있는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이 폭넓은 공감대를 획득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칙과 기준은 우선 국가및 기업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방향에 맞춰져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노사양측의 의견이 대립될 때에는 "국가경쟁력"라는
큰 틀속에서 함께 고민하며 합의점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각계각층의 "구호"나 "이익의 대변"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던롭위원회가 출범초기에 보여준 꾸준한 현장방문과 빈번한 접촉도 무시할
수없는 덕목이다.

위원회는 나아가 정치적 흥정이나 밀실타협을 단호히 배격할수 있도록
스스로 자생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정부에서 결론을 내려놓은 사안을 위원회에서 합리화시키는 일은 않겠다"
고 밝힌 현승종 위원장의 취임일성도 이같은 대목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노사관계 개혁위원회가 이같은 바램을 외면한다면 던롭위원회가
걸어온 길처럼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내지는 용두사미격 "개혁쇼"를
자행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