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28일 영국 브라이튼에 있는 중견 의류회사 QS패밀리웨어사는 해고
당한 전인사담당이사 크리스틴 에스플린 여사에게 14만파운드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이사보다 월급을 적게 준다며 이를 시정토록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는 이요구를 묵살했고 그녀는 노동법정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회사는 보복차원에서 그녀를 부당하게 해고했다.

그러나 회사는결과적으로는 노동법원의 판결에 따라 그동안 제대로 못준
임금과 부당해고에 대한 배상금조로 거금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의 간부말대로 "성차별은 이제 더이상 남는 장사가 아니다"는 사실
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였다.

영국여성의 사회진출은 활발히 이루어져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71%에 이르고 전체 노동력의 46%를 여성이 맡고
있다.

굳이 이런 통계를 대지 않더라도 44년간 여왕이 통치하고 몇년전까지
철의 여인 대처수상이 정치를 하던 나라가 영국이다.

불과 한달전까지 국가정보기관 MI6의 수장이여자였고 지금도 하원의장이
여자다.

이처럼 여성이 늘자 영국은 직장에서 남녀동등임금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물론 현실은 다소 이를 못따라가고 있기는 하다.

에스플린 사건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평등기회위원회의 모린 드빌국장은
"동등임금법이 급료에서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기업의 고위직의 경우
에도 여성이 남성의 72%밖에 못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시정
하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영국은 75년에 제정된 성차별금지법에서 남녀동등임금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성차별을 받은 사람이 법에 호소하는 경우라도 사용자가 보복을 할수
없도록 금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동일임금보장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성차별금지법은 이미 채용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입사시험의 면접때부터 성차별은 금지된다.

면접관이 성을 차별하는 질문을 하면 예비근로자는 이를 해당 노동법정에
고발할수도 있게 돼있다.

대우 현지법인의 인사과장인 다이안 마크여사는 채용때부터 남녀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판매직원을 신규채용할 때 채용광고문안에 세일즈맨
(Salesman)이나 세일즈우먼(Saleswoman)이란 말을 못쓰고 세일즈퍼슨
(Salesperson)이란 용어를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남녀평등보장장치때문에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세계금융시장을
바라보면 거래를 하는 런던금융가의 딜러자리에도 여자의 진출이 가능하다.

스탠다드 차터드은행의 딜링룸에서 만난 멜라니 킹(31)씨는 "직장내의
남녀차별은 없다.

승진이나 보직은 성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아시아지역금융상품과 특이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전문딜러다.

연봉은 그녀의 투자성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최근 영국이 여성고용평등장치를 만들면서 여자들이 눈에 띠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86년에 제가 처음 이회사에 들어올때 딜링룸에 여직원이 3%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약 10%에 이르게 됐습니다"

직장내에서 남녀불평등은 사라지고 있지만 영국도 아직 육아문제는 제대로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영국이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사회라 남성이 육아분담을 회피하고 사회적
으로도 별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5살미만의 아이를 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전체 여성의 경제
활동참가율 71%에 훨씬 못미치느 46%에 불과하다.

고학력여성일수록 직장이 안정된 30대중후반에 첫애를 갖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평균초혼연령이 5년전에는 26세였으나 현재는 29세로 올라간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

31살로 한창 직장에서 안정된 지위를 얻으려는 멜라니 킹씨가 아직 아이를
갖지 못한 것도 바쁜 딜러라는 일을 하면서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육아를 여성에게만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남성 나아가
사회가 나서야 문제입니다"라고 촉구했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대학교수인데도 육아에 어려움을 겪기는 줄리
커티스박사도 마찬가지다.

옥스포드대학 울프슨칼리지에서 러시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갓돌이
지난 제시카라는 딸이 있다.

"현재는 칼리지 옆의 유아원에 맡기고 있지만 생후 6개월때까지는 학교
선생님인 파트너(동거남)와 번갈아가면서 돌보느니라 힘들었다. 임신후에는
책을 한권도 못썼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경험이 있어선지 "만2살이상의 아이는 광범위하게
보급된 사립 공립유아원에서 맡아쥐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2세미만의 영아다. 이들 영아에 대한 각종 보호시설과 제도가 확충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여성들의 이런 요구에 따라서 영국은 최근 육아보호에 대한 제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우선 지난해 10월부터는 아버지에게도 육아휴직을 허용했다.

아버지도 육아부담을 나누어 지라는 취지였다.

옥스퍼드대학의 경우 조교수임용조건인 "30세이하" 규정을 없앴다.

출산때문에 현실적으로 휴직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는 애를
낳다보면 조교수가 될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폐지
이유였다.

남성우위의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도 이제는 경제침체로 여성이 대부분
일터로 나서고 있다.

여성의 숫자가 늘다보니 직장내의 남녀평등은 어느정도 확보됐지만 "엄마"
의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보장하는 육아지원은 문제해결책을 모색하는 수준
이었다.

( 안상욱 기자/김흥종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9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