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사상 연극다운 연극을 처음 보여준 것은 "토월회"라는
신극운동단체였다.

1923년 이들의 첫공연이 조선극장에서 열렸는데 그때의 레퍼터리는
안톤 체홉의 "곰", 버나드 쇼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남편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였나", 그리고 박승희의 창작극 "길식이"였다.

조용만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이 공연은 관중들의 조소와 야유속에
입장료를 반환하는 소동을 빚었고 토월회의 첫 공연은 빚더미만 안은채
막을 내리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1929년 역시 조선극장에서 막을 올린 토월회의
재기공연 "아리랑고개"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에게 집과 땅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가는 농민의 참상을 주제로 한 것으로 극장전체가 울음바다로
변하는 공감을 얻어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뒀다.

그무렵 유명한 무공가 최승희역시 "인도의 연가" "파우스트" "애급의
풍경" 등을 발표했지만 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서구식
연극이나 무용을 당시의 관객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공연예술작품을 무대에 올려 놓고 관객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속에서 예술인들은 외로운 투쟁을 감수할수 밖에 없었고 생활도
어려울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변했다.

모든 예술작품은 시장에 내놓고 팔수 있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문화산업"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도 이제는 생소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문화예술도 이제 대중의 소비를 창출해 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은
이미 대중의 소비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그것이 옳던 그르던 숨막히는 현대인의 생활속에서 기분전환 위로 여흥
등 한마디로 "오락"을 창출해 내는 것이 문화예술의 역할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문화프로그램과 식사메뉴를 맞춰주는 "주문식 문화
패키지 상품"이 어제 정동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모대학 교수부부 200쌍이 요청한 레파터리에 따라 서울팝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한뒤 뷔페까지 마련한 행사였다.

극장측은 앞으로 공연과 결혼식을 결합한 "문화결혼식"등의 상품도 내놓을
방침이라니 드디어 "주문 문화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자율적 작품구성과 대중의식수준 사이에 생겨나는 모순을 예술가들이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지 의심으럽긴 하지만, 일단 문화와 대량확산이라는
뚜렷한 목표아래 수립된 관객증심의 발상전환이란 점에는 호감이 간다.

"예술은 대중에 봉사하는 하녀가 아니다"라는 말은 옛말이 된 것일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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