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낙후가 사회악과 경제병리를 조장하고 있다.

은행이 돈에 쪼들리니 대출에 웃돈을 얹어주어야 한다.

국내외 금리차가 심하니 해외차입이 특권이 되고 관료의 힘이 세진다.

경쟁력없는 은행이 앉아서 장사하니 너도나도 인허가에 줄을 선다.

금융이 큰 것만 바라보니 서민이 소외되고 고객이 무시된다.

이 모두의 근본 원인은 하나다.

금융규제다.

금융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거미줄처럼 얽어놓은 행정규제 때문이다.

돈 장사하는 사람을 믿지 못해 하나 둘 정부가 챙기다 보니 규제는 자꾸
늘고 도무지 되는게 없다는 평가다.

지난주 행정쇄신위는 제100차 본회의를 갖고 금융규제 완화가 타부문에
비해 지지부진한 원인을 평가했다.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을 규제의 실행기관 내지 하부 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정책 당국이 낙후된 금융산업구조를 개혁하는 일보다는 현상유지에
더 나서고 있다.

벽을 허물어 경쟁을 촉진하고 족쇄를 풀어 스스로 크게 하기보다는
"행정 관료의 조정기능 확보"를 빌미로 도무지 간섭 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니 국민의 눈에 규제완화가 "관료와의 싸움"으로 보여지고, 공직자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드러나는 불행한 현실은 금융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관료들이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고,시장기능에 대한 신뢰가 없고,
민간의 능력을 불신하니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보수성이 조장되고 있다.

오랜 기간 감독당국의 타율, 곧 규제에 길들여진 탓으로 개혁에 대해
부정적 저항적이게 마련이다.

금융서비스 생산자들이 창구에 줄서 있는 예금주를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뒤를 살핀다.

업무의 본질적 내용에 맞게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보다는 관료가 책상머리
에서 일본 것을 급히 베껴 만들어 논 현실성없는 법규의 기계적 해석에
매달리고 있다.

처리절차가 정보 공개와 고객의 편의를 위해 명확하고 단순해지기 보다는,
보고와 통제의 편의와 적법성 하자유무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주체는 금융산업 투자자와 종사자이다.

금융행정관료도 금융감독 기관원도 아니다.

이제 금융산업을 키우는 일은 금융산업에 투자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금융 서비스를 높이는 일은 금융종사자의 창의력과 자발적 의욕에 운명을
걸게 하자.

거센 금융개방 파고를 맞아야 할 현시점에서 먼저 규제의 벽을 허물고
족쇄를 풀어주자.

관료들이나 감독자가 막을수 없는 경쟁과 개방의 두려움을 금융투자자와
금융종사자가 스스로 이겨내고 주인이 되게 하자.

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금융서비스 품질을 높이자.

이를 위해 첫째 금융산업과 금융업 투자자및 투자법인에 대한 회계및
경영정보 공개요건을 명확히 하고 금융기관의 설립및 경영참여를 자유화
해야 한다.

둘째 금융업무 관련법을 네거티브 체제로 전환하여 규제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금융권별 업무영역을 금융상품 위주로 복합화해야 한다.

셋째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검사의 방향을 공개확대, 경쟁촉진, 그리고
투자자및 소비자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