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청문을 달래고 있는데 설반이 사람을 보내 보옥을 초대하였다.

단오 명절을 핑계로 술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옥은 설반의 생일날 몸이 아파 생일 축하 잔치에도 가보지 않은
것을 미안해 하고 있던 차라 이번 초대에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왕부인의 방에서도 시시하게 보내고 이홍원으로 와서는 청문과
티격태격 말싸움이나 하고 이래저래 기분이 잡쳐버린 보옥이 설반의
집으로 가서 술이나 실컷 마시고 오자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보옥은 저녁 무렵이 되어 걸음을 잘 걷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이홍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취한 중에도 습인의 건강이 염려가 되어 습인의 방으로 건너가
보았다.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으며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습인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어때? 왕의원이 처방해준 대로 지어준 약을 먹으니 좀 차도가
있나?"

"왜 남의 몸은 만지고 그러세요?"

침대에 누워 있던 여자가 발딱 일어나며 쌀쌀맞게 대꾸하였다.

보옥이 깜짝 놀라 쳐다보니 그 여자는 습인이 아니라 청문이었다.

보옥은 머쓱해져서 습인은 어디로 갔나 둘러보았다.

"어, 습인은 어디로 갔지? 몸도 아픈데"

"습인 언니는 도련님 방에 가서 잠자리를 보고 있죠"

청문이 더 이상 보옥과는 같이 있기 싫다는 듯이 침대에서 내려와
나가려고 하였다.

보옥이 슬그머니 청문의 손을 잡아 끌면서 혀가 약간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침에 욕을 좀 했다고 아직도 화가 나 있어? 이제 화를 풀고
말이야"

보옥이 청문을 안으려고 하자 청문이 보옥의 가슴을 미는 척하며
말했다.

"나 지금 목욕하러 가야 해요.

이거 놔주세요.

사월이가 목욕을 막 마쳤을 텐데 그 다음이 나란 말이에요"

"목욕? 내 방으로 물통을 가지고 와서 나랑 같이 하자.

나도 술을 좀 마셨더니만 온몸이 끈적거려서 또 한번 더 목욕을
해야겠어"

"후후, 작년 여름인가 벽흔이가 도련님 방에서 목욕 시중들던 때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때 목욕하는데 장장 세 시간이나 걸렸을 걸요.

목욕이 끝난 후에 도대체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우리가
들어가보았죠.

그랬더니 방바닥이 온통 물투성이고 침대 위에 펴놓은 요까지 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죠.

그 일을 두고 우리는 며칠을 깔깔대고 웃었는지 몰라요.

그 이야기만 하면 벽흔이는 얼굴이 벌개져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고.

그때 목욕 한번 거창하게 하셨죠. 후후"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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