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과 청문이 옥신각신하는 통에 습인이 병석에서 간신히 일어나
나와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청문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습인은 목이 쉰 소리로 물으며 보옥과 청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청문이 보옥에게 욕을 듣고 무안을 당한 보복을 습인에게
하려는 듯 습인을 향해 눈씨를 돋우며 대들었다.

"습인 언니가 보옥 도련님을 시중들지 않고 우리가 드니까 말썽이
생긴다 이 말이죠?

우리를 못 믿으면 습인 언니가 먼저 나와서 시중을 들지 왜 이제
나와요?

이렇게 일어나서 간섭하는 것을 보니 몸도 그리 많이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죠?"

청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보옥이 부아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릴
정도가 되었다.

습인은 청문과 말싸움을 하고 있다가는 보옥이 또 자기에게 처럼
청문에게 발길질이라도 안길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청문에게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우선 청문을 보옥에게서
떼어 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좀 꾀병을 부렸어.

지금부터 내가 도련님 시중을 들테니까 청문이 너는 밖에 나가 놀아도
좋아.

정원에 나가면 단오 명절 놀이가 한창일 거야. 우리는 안에 있지 뭐"

청문이 눈치가 있으면 얼른 밖으로 나갈 법도 한데 보옥의 말대로
굼벵이처럼 미련하여 이번에는 습인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우리라구요? 습인 언니는 누구와 누구를 우리라고 한 거예요?

물론 보옥 도련님과 습인 언니 자신을 우리라고 했겠죠.

흥, 따지고 보면 우리라고 할만도 하죠"

"청문이 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습인도 성이 나는지 몸이 아픈 것도 잠시 잊고는 정색을 하고 청문에게
물었다.

"누가 모를 줄 알고요.

우리라는 사람들이 남의 눈을 피해 무슨 짓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만! 청문이 너"

습인은 청문의 말을 급히 가로 막으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보옥은 저러다가 습인이 또 쓰러지겠다 싶어 청문을 크게 꾸짖으려고
하다가 자기가 습인과 한 짓이 있는지라 마음을 바꾸어 은근한 말투로
청문을 달래기 시작했다.

청문이 가정 대감에게 고자질이라도 하는 날에는 습인뿐만 아니라
보옥도 초상이 날 판이었다.

"청문아, 너에게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구나.

네가 이전에 유리 그릇이나 마노 그릇을 깨뜨렸을 때도 내가 한마디
꾸지람을 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마음이 울적하여 화를 잘 내는구나"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