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을 발명에만 매달려 살아온 개인발명가 L씨는 최근 15년동안
침몰하지 않는 선박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2개의 실용신안권을 보유할수 있었다.

94년5월 L씨는 국내굴지의 회사인 S사에서 자체기술로 건조하였다고
신문에 보도된 선박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선박은 외형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자신의 실용신안권을 사용하지
않고는 건조될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L씨는 즉시 현지에 가서 운행중인 선박을 살펴보았다.

관찰결과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S사에 대해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S사가 보내온 답변은 선박의 구조가 다르므로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L씨는 대기업이 개인발명가를 얕잡아 보는 것같은 생각이 들어 법적투쟁을
해서라도 사실을 규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심판 또는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변리사나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거대한 기업과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송사에
휘말린다는 것도 두려웠다.

어떻게 할바를 모르며 고심해온 L씨는 발명가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지난날들이 그렇게 후회스러울수가 없었다.

그러던 L씨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허청이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단기간에 비용도 들지 않고
다툼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었다.

L씨는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2개월후 3인의 산업재산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담당조정부가 주관하는 조정회의에서 S사와 마주앉았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S사는 예상과는
달리 노 발명가를 존중하면서 세부설계도와 사진, 각종 자료를 상세하게
제시하고 이 선박의 구조와 L씨가 등록받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다.

L씨는 S사가 제출한 구체적인 자료와 설명을 통해 S사의 선박이 자신의
기술과 다르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여 양자가 서로 화해하기로 하고
다툼을 끝냈다.

L씨와 S사가 합의한 사항에는 앞으로 이 사건과 관련해 심판이나
민.형사상 소송을 서로 제기하지 않기로 한 내용이 포함됐다.

뿐만아니라 S사에서는 L씨가 보유하고 있는 선박구조에 대한 특허-실용
신안권을 검토하여 그 우수성이 인정될 경우에는 충분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실시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만약 이 분쟁이 심판이나 재판으로 진행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어느 한쪽은 패소하게 되고 패소한 당사자는 이에 불복하여
항고심판, 대법원까지 가게되는 등 분쟁이 장기화돼 해결에는 2~5년이
걸릴 것이다.

그뿐 아니다.

쟁송비용도 상당한 금액이 소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분쟁으로 인한 양당사자간의 고통과 손실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소요기간은 불과 2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양 당사자들이 조정에 참석하기 위해 지불한 약간의 교통비 이외에는
경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와함께 상호존중과 양보의 분위기속에서 분쟁이 해결됨으로써 향후
양 당사자간에 기술을 매매할수 있는 길도 터 놓게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발명진흥법에 근거해 지난해 1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는 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 등의 침해에 관한 분쟁뿐만
아니라 이들 권리의 양도-실시에 관련되거나 직무발명보상에 관계되는
분쟁을 무료로 조정해 주고 있다.

이 위원회는 산업재산권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판.검사 변호사
변리사 산업계 특허청 공무원등 20명으로 조정위원이 구성돼 있어 분쟁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선에서 원만하게 조정을 이루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조정제도가 있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산업재산권분쟁을 전담하는 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직무발명보상 분쟁위원회), 중국(특허-상표관리기관) 등이
있으며 최근 우리나라의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제도에 대해 미국 일본등
선진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요청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재산권에 관한 분쟁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된 건수가 95년에는 4건
(2건은 화해성립)이었으나 96년에는 3월말까지 조정신청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아직까지 이 제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앞으로는 산업 재산권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 당사자는
심판이나 재판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전에 먼저 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도록
하고 주변에 있는 분쟁 당사자들에게도 이를 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 위원회가 산업재산권 관련분쟁해결의 일차적이고 중요한
수단으로 활발하게 이용될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