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의 정립 아래 지역대립이 더 노골화하고 많은 출마자들이 과열을
빚은 속에 이번 선거 후유증은 어느때 보다 대단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했었다.

그러나 며칠새 정국은 빠른 속도로 안정국면으로 접어들어 잘하면 경제의
연착륙, 남북대화 재개등 당면 과제가 잘 풀려 나가리라는 안도마저 감돈다.

한참동안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선거법에 대조되는 혼탁, 국민을 흥분-
불안케 만든 장비서관의 떡값 시비와 북한군 무장부대의 판문점 투입등
진화가 어려워뵈는 총선이후 난국의 불씨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침체했었다.

그러던 것이 주중 며칠에 극적이라 할만큼 급 반전을 맞게 된 것은
실로 해프닝과도 같은 몇 고비였다.

먼저 화요일 4자회담을 담은 제주도의 한-미선언, 수요일 김영삼 대통령의
야당영수 연쇄회담 제의, 그리고 목요일 이후 청와대에서 대좌를 끝내고
나오는 당사자들의 표정이 그것이었다.

오늘 역시 김-김 대좌지만 특별히 3김의 연쇄 접촉이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어찌 보면 좁아터진 한국 정계안에서 이들 3자가 함께 보낸 기간은
최소 35년이다.

게다가 노선의 반-합에 불구,3자 상호간 축적된 희비는 본인들 아니면
누구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 정도라고 봐야 한다.

사화시대가 아닌 이상 그만한 사이라면 뭣보다 깊은 인간적 우의를 느껴야
정상이다.

하물며 통일위업을 운위하는 대권경쟁 차원의 대 정객인 3김의 개인사야
말로 한 시대의 귀감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그들이 나라와 국민에 끼친 영향을 어림하라면 당사자든 국민이든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기는 왔다.

모두 유한성을 천착할 70 연륜에 있고 보면 여생 나라를 위해 할수 있는
일, 할수 없는 일을 가리고 단안을 내릴 의무가 그들에겐 있다.

다행히 영수회담은 성공적이다.

첫날 김대중총재의 밝은 표정과 코멘트,다소 느낌은 다르나 김종필총재의
반응에서도 어두움보다는 밝은 빛을 읽었다고 해도 속단은 아닌듯 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민주발전을 고대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이미 권위의 시대는 가고 합리의 시대가 왔다.

영지같은 텃밭에 할거하며 가신 인맥을 거느려야 직성을 푸는 정치는
더이상 이땅에 잔존할수 없다.

또 전쟁과 탄압이 없는 시대에 상명-하복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부적절
할뿐 아니라 그런 인간형이 양성될 환경도 아니다.

새 시대엔 제도와 법에 따라 조직을 이끄는 합리적 리더로 족하다.

선거직후 연쇄회담의 중심과제가 선거사범의 철저문책과 의석을 염두에 둔
정당 개편이었음은 무리가 아니다.

말로는 서로 여-야 불문한 엄단을 주장했겠지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가 문제다.

그러나 이번도 당선무효 희생없이 그냥넘기면 공명선거 실현은 공염불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건 공정을 그르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차기를 위해서도 소아를 희생하는 3금의 대정객다운 운신이 아쉽다.

경쟁력있는 복지 경제, 새판도 속에 민주통일을 준비할 정치구도 마련에
힘을 합치기 바란다.

북한도 남쪽이 그렇게 나가면 분명 생각을 바꾸리라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