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금천아에 대한 욕정을 어찌하지 못해 오른손을 뻗어 금천아의
왼쪽 귓볼을 만졌다.

그 바람에 금천아가 차고 있던 가짜 금 귀고리가 흔들렸다.

금천아가 목이 꺾일 듯이 고개를 깊게 한번 떨구었다가 퍼뜩 눈을
떴다.

"어, 도련님 오셨네"

금천아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두 눈에는 여전히 잠기운이 묻어
있었다.

보옥은 금천아의 귓볼에서 얼른 손을 떼고 멋쩍은 듯 빙긋이 웃었다.

금천아는 보옥이 방금 무슨 짓을 하였는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금천아는 자기 입가에 침이 묻어 있는 것을 알고는 손등으로 입술
주위를 닦으며 보옥을 향해 피씩 웃었다.

그리고는 아직 잠들어 있는 왕부인을 내려다보고 다시 왕부인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하품을 하며 졸음을 이겨내려 애를 썼다.

"몹시 졸리는 모양인데 졸음을 쫓는 약 한알 줄까?"

"무슨 약인데요?"

"향설윤진단 이라고 졸음뿐만 아니라 삼복 더위도 잊게 해주지"

"향기로운 눈밭에서 핀 꽃뿌리로 만든 약인가요? 이름이 참 멋있네요"

그러면서 금천아는 그 약을 달라는 뜻으로 입을 반쯤 벌렸다.

보옥은 어머니 앞만 아니라면 벌어진 금천아의 입속에 혀라도 집어넣어
달콤한 침을 빨아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옆구리에 차고 있는 향주머니에서
향설윤진단을 한알 꺼내어 금천아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금천아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그 약을 집어삼켰다.

보옥이 손짓을 하여 금천아로 하여금 허리를 구부리도록 하였다.

금천아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기 위해서였다.

"너 내일 이홍원으로 오지 않을래. 어머니에게는 내가 말씀을 잘
드릴테니"

"이홍원에는 습인 언니를 비롯하여 사월이 청문이 추문이 소홍이 등등
시녀들이 많은데 왜 저를 오라고 그러세요?"

금천아는 그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물어보았다.

"소홍이는 희봉 형수님이 데리고 갔어. 그 대신 다른 시녀를 준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

내일 꼭 오도록해. 아니, 아예 지금 어머니를 깨워서 말씀을 드리고
데리고 갈까?"

"급하시긴. 도련님이 마님께 말씀만 잘 드리시면 내일 갈 수 있겠죠.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금천아가 향설윤진단 덕분에 졸음이 달아났는지 두 눈에 실웃음을 담고
엉덩이를 약간 비틀며 보옥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그때였다.

왕부인이 와락 몸을 일으키더니 금천아의 뺨을 냅다 갈겼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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