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기분좋게 취하여 풍자영의 집에서 이홍원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고 차를 마시며 습인에게 풍자영의 집에서
말짓기 놀이를 하면서 놀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옥함이라는 배우 알지? 그 사람이 말이야, 말짓기 놀이를 마치고
노래를 부른후 모련꽃을 집어들면서 시를 한수 읊는 거야. 화기습인지주난"

그 시는 꽃향기 풍겨오는 한낮의 따스함이여라는 뜻이었다.

"어, 습인이라는 내 이름이 들어가 있네요"

영리한 습인이 얼른 알아차리고 대구하였다.

"그래서 장옥함이 설반에게 놀림을 받았지. 남의 보물을 함부로
들먹인다고 말이야"

"남의 보물이라니요"

습인이 보옥의 침대 자리를 펴며 물었다.

"아, 습인이 나의 보물이잖아. 장옥함이 그걸 모르고 시를 지었다면서
몇번이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니까"

"체, 언제 도련님이 나를 보물로 취급해주었어요? 이제 자리를 폈으니
여기 와서 눕기나 하세요. 피곤할테니"

습인이 보물 어쩌고 하니까 기분은 나쁘지 않은듯 미소를 머금고 입을
비북대며 보옥을 부축하여 침대에 뉘었다.

그러다가 보옥이 허리에 두르고 있는 붉은 띠를 보고는 샐쭉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누가 주었는지 좋은 허리띠가 생겼네요.

그럼 제가 드린 허리띠는 돌려주세요.

그러고도 나를 뭐 보물로 여긴다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보옥은 아차 싶었다.

장옥함에게 준 회색 허리띠는 습인이 보옥을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것이
아닌가.

선물로 받은 것을 남에게 또 선물로 주다니.

"장옥함이 습인이 이름을 함부로 들먹였다면서 사과의 표시로 이
허리띠를 주는 거야.

그래서 나도 엉겁결에 습인이 나에게 준 허리띠를 장옥함에게 주고
말았지 그 순간에는 그만 깜빡했다니까.

정말 미안해 그 대신 내가 좋은 선물을 하나 줄게"

습인은 한숨만 내쉬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보옥이 자리에 눕자 습인도 바깥방 자기 침대로 가누웠다.

바깥방이라야 문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터라 같은 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옥은 잠든체 하고 있다가 습인이 깊은 잠으로 떨어졌을때 살며시
일어나 습인이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기 허리띠를 풀어 습인의 허리에다 매어주었다.

그러면서 보옥이 두 손으로 습인의 허리를 만져보니 전보다 조금
가늘어진 것도 같았다.

보옥이 습인의 엉덩이를 한번 쓰다듬어보고 자기 침대로 돌아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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