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아가 노래를 부르고 나서 술을 한 잔 마신 후,자기를 계속 놀리고
있는 설반을 웃음 띤 눈길로 흘겨 보며 말했다.

"이제 설반 도련님이 할 차례예요"

"어, 나도 해야 하나?"

말짓기 놀이할 실력이 제대로 없는 설반이 난색을 띠자, "그럼 해야
하고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설반이 어쩔수 없이 입을 열어 말짓기 놀이로 들어갔다.

"여자의 슬픔은, 어, 여자의 슬픔은."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설반이 더듬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쩔쩔 매는 설반의 꼴이 우스워서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며 입을 비쭉거렸다.

더듬거리던 설반이 간신히 구절이 생각났는지 급하게 말을 뱉었다.

"여자의 슬픔은 제 여편네 빼앗기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요"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주안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이 와 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첨광과 선빙인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왜 말이 안 된다고 그러는 거야? 남자가 왜 다른 남자에게 제 여편네를
빼앗기겠어?

그게 힘이 없어서 그럴 거 아냐?

그런 남자에게 시집을 가 보았자 그거 하는 재미는 없을 테니까
여자로선 슬픈 거지"

"그러고 보니 말이 되네"

정일흥과 호사래는 설반을 봐주자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껌벅였다.

설반은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여자의 근심은, 어, 여자의 근심은 뭐랄까"

이번에도 더듬거리다가 불쑥 말을 뱉었다.

"여자의 근심은 여자 혼자 있는 방에 큰 원숭이가 뛰어드는 것이요"

"그건 정말 말이 안 돼"

누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함을 쳤지만 설반은 눈을 질끈 감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여자의 기쁨은 밤새도록 남자와 엎치락뒤치락 하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이요, 여자의 즐거움은 우뚝 솟은 남자의 그것이
몸 속으로 시원하게 쑤욱 들어오는 것이요"

"아이구. 망측해라"

운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 장옥함이 말짓기를 하였는데 점잖게 말을 지어 보옥에게
호감을 샀다.

보옥은 회색 허리띠를 장옥함에게 선물로 주고 장옥함 역시 보옥에게
붉은 허리띠를 선물로 주었다.

그 붉은 허리띠는 천향국 여왕이 보내준 것으로 향내까지 은은히
풍겼는데 여름철에 매면 몸에 땀이 나지 않는다고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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