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시절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을 읽고 놀라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40여년전 "인형의 집"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아름다운 주인공 노라는 어느날 자신이 가정속에서 인형처럼 살고 있음을
깨닫고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삶을 꿈꾸며 남편의 품을 떠나 집을 나간다.

여성상위를 부르짖는 요즈음에는 이책의 줄거리를 구시대의 유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은 변해도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인격과 재능을 이해
하고 상대방을 도와줌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더욱이 여성의 경우 남편이 별도의 독립된 개체로서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 성공은 바라볼 수 없으며 나아가 가정의 행복 또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믿는다.

요사이 필자의 화랑에서 전시중인 재미여성작가의 경우는 부부간의 상호
협조와 신뢰의 결과를 잘 보여준다.

고등학교만 나와 화가로의 대망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간 그녀는 고생끝에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시카고대대학원에서 정치와 법학을 전공하던
미국인 남학생을 만난다.

그는 제대로 된 붓한자루 없는 가난한 한국출신 여성화가 지망생을 위해
붓과 물감을 사서 선물하는 등 배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졸업후 그녀는 한국으로 되돌아오고 미국인 남학생은 변호사가 돼 정계에도
발을 들여놓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편다.

그러나 그는 작고 연약하지만 재능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던 한국인 여자
동창생을 잊을 수 없어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 현재 미국무부의 고위관리인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미국화단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녀의 집에서는 지금도 남편이 그림그리는 아내를 위해 요리와 청소를
해주며 그녀가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리고는 늘 "나는 가정에서 봉사활동과 자선사업을 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모두 밝고 명랑한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미국인 남편의 외조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새겨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