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일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언제부터인지 우리 생활속에서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이 깊숙히 파고
들어와 있다.

구체적으로 조그만한 상점을 하나 운영하더라도 팩스(FAX) 기계는 필수적
으로 가지고 있어야 물건 주문도 하고 대금청구서를 송수신하게끔 되어있다.

또 아파트지역에서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을 하더라도 컴퓨터가 있어야
누가 언제 빌려가고 반환하였는지 체크할수가 있게 됐다.

더우기 이동통신 수단인 휴대폰의 보급을 보면 이미 200만대가 넘어 섰다.

이런 이유인지 각급학교 동창회의 동문주소록을 보면 팩스전용 전화번호가
실리더니 이제는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실리는 것을 볼수 있다.

이와같이 컴퓨터의 보급이 사무실뿐만아니라 동네 가게에서 각 가정까지
뻗치고 통신망이 유선에서 무선까지 확대됨에 따라 자연히 정보화사회가
우리주위에 가까이 오는 것을 누구나 무의식중에 느낄수 있다.

휴대폰에 의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전화를 걸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결합하여 우리생활의 기본틀을 바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18세기 산업혁명에 의해 산업사회가 형성되며 인류문화를
바꾸어 놓았듯이 정보화 사회는 새로운 인류문화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정보화 사회란 단어가 익숙해져 있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정보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열심히 국민을 설득한 공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생활속에 정보화가 얼마나 우리를 변화시켰느가를
보면 아직 원시적 단계에 있다 하겠다.

즉 정보화 사회란 관점에서 먼훗날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보면서
1996년은 정보문화의 관점에서 석기시대와 같았다고 비유할런지도 모른다.

이는 오늘의 우리 생활이 산업사회의 연장에서 영위되고 있고 정보화
사회의 관점에서는 겨우 첫발을 내딛은 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살고 일하는
방법이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고하는 사례가 선진국에서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

한예로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곳 교수에게 LA내서 제일 좋은 문방구가 어느 것이냐고 물었더니
"스테이플"이라는 문방구 연쇄점을 추천해줘 방문한 적이 있다.

문구점이야 당연히 누구든지 들어갈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다
보니 경비하던 사원이 회원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점이 문방구 아니냐" "무슨 회원권이냐"고 반문했더니
"스테이플" 체인점들은 회원만 출입할수 있는 상점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사원의 설명인즉 "스테이플" 상점 회원권은 회비는 없지만 회원이
되기 위하여는 성명 주소 전화번호 직장등을 상세히 기입하는 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원의 지시대로 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니 즉각 회원권을 발부하고 어서
들어오시라며 환영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이 상점에서 몇가지 물건을 구입한후 미국 교수로부터 들은 설명이 더욱
흥미롭다.

즉 "스테이플" 문방구 체인에서는 회원권이라는 미명하에 고객의 성명
주소 직업을 자세히 파악할뿐만 아니라 고객의 구입 패턴을 지속적으로
분석한다는 얘기였다.

예를들어 어느 교수가 수시로 출입하며 연필 볼펜 마커등을 늘상
구입한다면 이 고객은 볼펜 마커등을 구입하는 고객으로 분류돼 정보화되며
이렇게 축적된 정보를 가지고 그 고객에게 광고전단을 보낼 때는 볼펜 마커
등만 실리도록 편집해 발송함으로써 고객 스스로가 놀라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스테이플"에서 보내는 광고전단에는 항상 고객이 필요해서 구입할만한
물건만 세일 품목으로 선정돼 실리게 되는 셈이다.

결국 "스테이플"이란 문구점은 문방구 사업의 성격을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문방구점이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았다면
"스테이플"상점은 불특정 다수인을 특정 다수인으로 바꾸어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회비없는 회원권 현상은 문구점 체인뿐만 아니라 옷가게 신발
가게에서 음식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미국에서 얼마든지 관찰할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상점들의 영업활동을 보면 다시한번 원시적이라고
느낄수 있다.

한 예로 아침마다 조간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광고 전단을 보자.

대부분이 동네에 있는 상점들로서 슈퍼나 핏자집이나 음식점 광고등이다.

문제는 동네에 있는 이런 상점들이 자기 주위에 어떤 소비자가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광고 전단을 돌려서 누군가 우연히 보고 물건을 사달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광고방식은 정보화사회의 관점에서는 석기시대의 일화로 훗날
이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산업사회에서 "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제품의 생산을 잘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이제 정보화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이러한 명제도 바뀌게 될 것이다.

즉 "한 나라가 잘살기 위하여는 정보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정보화사회를 위한 기본이 갖추어지고
있고, 정보화사회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도 않다.

이제부터 정보화사회가 본격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경쟁의
개념과 패턴을 바꾸며 정보를 경영전략에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원가나 품질을 가지고 경쟁에서 이겼다면 앞으로는
정보를 가지고 이긴다는 경영 패러다임을 새로히 설정하여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