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성 < 숭실대교수/경제학 >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온통 선거 이야기이다.

전직 두 대통령의 구속과 재판도, 북한체제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특종뉴스도,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경제뉴스도 별로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모두가 선거전쟁 때문인 것 같다.

각 정당마다, 각 후보자마다 근사한 선거공약을 내놓고, 저마다 자기를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내놓고 있는 공약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왜 그렇게 장미빛 일색인 공약을 남발하면서까지 저 여의도 대리석건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

분명 국회의사당 정원의 감나무엔 내가, 아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곶감들이
수없이 달려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 후보자로 공천을 받으려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려고 그렇게 안간 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금뺏지를 달아 보겠다는 명예욕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일해
보겠다는 의협심이 여의도로 달려가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필자만이 갖는 잘못된 편견이기를 기대해 본다.

비용.편익 분석에 익숙해 있는 경제학자로서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엄청난
돈을 뿌리는 것은 그 이상의 수입이 보장되는 묘한 메카니즘이저 여의도
대리석 건물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선거전문가들은 통상 대통령 선거때는 1조원, 국회의원 선거때는 5천억원의
선거자금이 시중에 쏟아진다고 한다.

또한 정치현장에서 "10당5락"이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고 한다.

만약 말그대로 이번 선거에서 10억원을 써야 당선된다면 이번 선거기간
동안에 어느 정도의 자금이 뿌려질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예산에 책정된 선거관리 비용도 무려 2백96억5천6백만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14대 총선때의 선거관리 비용보다 2배가 넘는 액수이다.

여기에다 선거사범 단속등을 위해 내무부에 편성된 예산 58억원을 합하면
올해 총선과 관련된 정부예산도 사상 유례없는 액수가 된다.

87년 대통령 선거의 망령이 되살아 나고 있는 듯한 조심이 엿보인다.

대통령 선거 전3.0%에 불과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7.0%로 무려 2배이상 올랐다.

지난 92년 3월의 14대총선과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87년의 대통령선거
보다는 비교적 경제에 미친 부작용이 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연말기준 총통화(M2)가 18.4%나 증가했었다.

이는 집권여당이 재집권하기 위해 선거직전에 경기가 호황국면이 되도록
각종 선심성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선거후 재집권하면 선거전의 부양된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긴축정책을 취하는 이른바 정치적 경기순환 주가가
한국의 선거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예이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정당이나 정치가가 공공 또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지향하여 행동하는 집단이나 개인이라는 교과서적 생각은
머리속 한켠에 처박혀 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제 그러한 인식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선거가 그러했고, 정당사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정당이나 정치가가 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득표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한다고 합리적 가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 불구하고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졌다, 없어졌다 하는
정치사는 소득 1만달러시대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후진적 정치지표의 하나
이다.

본질적인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후진적 정치행태가 관습화됨으로써 선거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부패고리가 형성되며 경제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경제개발에 착수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정치의
부패로 경제가 곤두박질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의 라틴아메리카국가
들을 이 시간에 상기해야 한다.

이들 국가들에 있어 정부의 경제정책은 문제해결보다는 대중인기에 영합
하는 쪽으로 또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얻는 방향으로 치우쳐줘서 시행됐다.

부패된 관료정치체제, 그리고 심화된 정경유착 등도 모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병들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 결과 이들 국가들은 저성장, 고인플레, 국제수지의 적자, 외채증가 등의
경제의 악순환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경제는 경기 후퇴국면에 놓여 있으며 경기는 양극화현상을
보이면서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 2월 무역수지는 사상최대의 적자를 기록했고 외채도 증가
하고 있다.

이번 선거로 인해 우리 경제에 검은 구름이 몰려 나오지나 않을지 불안
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94년에 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지방자치법 등 3개
정치법안이 여야 협상으로 통과됨으로써 돈안드는 깨끗한 선거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5대 총선에서 선거비용 법정한도액 8천4백만원
내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최소한 학연 지연 등을 초월해 바르게 투표하자고
외치면 아직도 어디선가 "웃기는 소리 말라"는 비아냥의 음성이 들려 오는
듯하다.

우리는 이번 선거로 인해 우리 경제에 후유증이 없도록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하고 그 지혜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금권선거"가 더이상 이 땅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소득 1만달러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선거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망국병을 타파할 의식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