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대륙이 "글로벌 시장"의 한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간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이어
남미에서는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가 결성되는 등 유럽시장을 능가하는
규모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단순 마케팅을 넘어서 현지 생산공장 진출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확대되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중남미 최전선"을 현지 취재를 통해
시리즈로 짚어 본다.

<편집자>
===================================================================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국경을 넘어 차로 40분쯤 달리면 산뜻하게 단장된
이정표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엘 플로리다 공단, 앞으로 1km".

불과 2년전만 해도 잡초가 무성했던 이 곳은 어느새 인근에서 가장 활기찬
지역으로 변모했다.

삼성전자가 추진중인 복합가전단지로 인해서다.

삼성이 이 곳에 컬러TV와 브라운관 공장을 준공함으로써 국내 가전3사는
멕시코 마킬라도라(보세가공)지역에 각각 강력한 생산기지를 구축하게
됐다.

꼭 두달전 대우전자는 인근 산루이스 콜로라도에 연산 3백만대의 컬러TV
공장을 준공했다.

LG는 이미 지난 92년부터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인 멕시칼리에 연산
1백만대 규모의 컬러TV 공장을 가동중이다.

유럽 동남아 중국에 이은 글로벌 생산기지.마킬라도라지역 내에 위치한
한국 기업 "중남미 최전선"의 현장이다.

과거 단순 조립기지에 불과했던 멕시코가 어느덧 전략적인 생산거점으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는 한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잇는 NAFTA역내에서 자유로운 상품이동을 꾀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관세상의 혜택만이 "중남미 러시"의 전부는 아니다.

"멕시코에 세운 복합가전단지는 까다로운 북미시장과 광활한 남미시장을
동시에 잡는 투 포인트(two point) 거점"(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점에서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처하는 "우회기지(go around)"를 한 축으로, 부상하는
중남미시장을 겨냥한 "거점기지(spring board)"를 또 다른 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꿈틀거리는 시장 "남미"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같은 의도는 우선 생산규모에서도 드러난다.

대우전자의 산루이스 컬러TV공장 규모는 연산 3백만대.

삼성 역시 지난해까지 1백10만대였던 컬러TV 생산규모를 연산 2백40만대로
2배 이상 늘렸다.

LG는 멕시코에 있는 제니스공장 생산분까지 포함해 모두 6백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30%는 미국시장에, 30%는 멕시코 내수시장에,나머지 40%는 여타 중남미
시장에 공급한다"(양재열 대우전자 사장)는 철저한 "포트폴리오"마케팅을
위한 것이다.

생산기지의 "복합화"와 "수직계열화"도 이같은 "투 포인트"거점의 연장선
이다.

삼성전자는 전자 (컬러TV) 전기 (편향코일.고압변성기) 전관 (브라운관) 등
계열사별 일관생산체제를 갖췄다.

대우전자는 산루이스 공장에 핵심부품 설비를 갖춘데 이어 내년엔 계열사인
오리온전기도 멕시칼리지역에 입주시켜 브라운관을 생산토록 할 계획이다.

LG전자는 멕시칼리 인근에 부품업체 전용공단을 만들어 부품에서 셋트까지
일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작업을 끝마쳤다.

NAFTA의 현지부품의무조달(local contents)비율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안정적인 부품공급선을 확보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마킬라도라지역은 생산거점으로서도 최적지.

티후아나 공단은 샌디에이고와는 차로 불과 한시간 거리(62km)일 정도로
미국과 가깝다.

롱비치 항구에도 3시간이면 닿는다.

멕시코정부의 "마킬라도라"정책도 매력적인 것은 마찬가지.

원래 "방아찧는 사람"이라는 뜻의 "마킬라도라"는 총 연장 1백km에 달하는
미국과의 서부 접경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수출자유지역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낮은 관세로 미국 캐나다 등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미국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조건인 셈이다.

저렴한 생산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티후아나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임금은 시간당 평균
2.7달러.

미국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콜로라도 강을 수원으로 쓰는 용수도 외국기업들에는 싸게 공급된다.

전기료는 미국의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마킬라도라 지역에 멕시코 업체를 포함해 6백여개 외국기업들이 몰려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질적인 정치불안과 만성적인 경제불황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과거
찬란했던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그 한 가운데에서 국내 가전사들은 글로벌
기업을 향한 "최전선"의 깃발을 올렸다.

위로는 미국을, 아래로는 남미를 겨냥하고서.

[ 티후아나(멕시코) = 이의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