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서 한낮이 되도록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옥이 잠결에 들으니 대관원 전체가 무슨 축제라도 만난 듯 떠들썩
하였다.

오늘이 무슨 날이더라.대옥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절기와 명절들을
따져보았다.

오늘이 사월 스무엿새날이니까 망종절 이구나.

망종이란 까끄라기가 있는 벼나 보리 같은 곡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보리는 거두어 먹게 되고 벼는 심기 시작하여 이래저래 즐거운 날이
망종절인 셈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봄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봄은 인간들이 보내고 말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봄 동안 꽃들을 잘 간수해주었던 화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내년 봄에도 온갖 꽃들을 잘 돌보아달라고 기원하는 화신제도 망종절에
함께 치러지는 것이었다.

대관원 뜰에서는 대관원에 사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영국부와 녕국부
여자들까지 모여들어 봄을 태워 보낼 꽃가마와 꽃말 들을 만드느라고
왁자지껄하였다.

그 가마와 말 들을 만드는 데 갖가지 종류의 꽃들만 아니라 버들가지
들도 사용되었다.

여자들은 또 색색가지의 비단 띠들을 나뭇가지와 꽃들에 묶어서 매달아
두기도 하였다.

꽃들이 봄과 함께 스러지더라도 그 비단 띠들이 꽃들을 대신하여
울긋불긋 피어 있을 것이었다.

"아, 다들 즐겁게 놀고 있군"

대옥은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눈길을 천장으로 향한 채
중얼거렸다.

이렇게 모두 기뻐하는 명절날 왜 자기만은 우울하기 그지없는가 하는
탄식인 셈이었다.

저들이 꽃가마와 꽃말에 태워서 보내는 봄과 함께 대옥도 어디론가로
훌쩍 사라지고만 싶었다.

뜰에서는 여자들이 떠들며 놀다가 문득 대옥이 보이지 않는 사실을
알고는 대옥을 찾느라고 야단들이었다.

대옥도 당연히 뜰에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아 아직도 방안
침대에 누워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여자들이 대옥을
찾아다녔다.

"이상한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여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보채가 아무래도 대옥이 소상관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 거기로 가보기로 하였다.

보채가 소상관으로 가는 길에 또 한 떼의 여자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영국부나 녕국부의 여자들이 아니고 다른 가문의 여자들이 함께 놀자고
대관원으로 온 것이다.

보채는 그 여자들에게 화신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가리켜주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겨 소상관으로 다가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