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선 근년들어 실명제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등이 실시되더니 12.12및 5.18사건 재판에 있어선
방청실명제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방청실명제란 용어는 그 성격상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것 같다.

실명제란 원래 권리인과 명의인이 다를 경우에 권리인과 명의인을 실명으로
일치시키는 제도인데 재판의 방청엔 권리인도 명의인도 없기 때문이다.

공개재판주의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일반 국민이 누구나 방청할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으로 재판비밀주의에 대응하는 제도이다.

재판의 공개주의는 근세에 들어와서 인정된 제도로 그 이전엔 전제국가의
규문절차에 의한 비밀주의가 행해졌었다.

공개주의는 재판을 국민이 감시할수 있도록해 재판의 공정은 물론 국민이
재판을 신뢰할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27조도 형사피고인은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방청석은 물리적으로 수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혼란을
막기 위해 미리 방청권을 배포하고 있다.

다만 이번 재판은 방청희망자가 너무 많아 방청권이 극장 암표처럼 뒷거래
되고 있다 한다.

재판부에서 방청권을 배부하는 까닭은 공판정의 질서유지와 함께 소송절차
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부득이한 조치이다.

또 재판의 권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법정내에서 함부로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든지 기록을 못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일본 법정에서 메모행위를 할수 있도록 허용한 판례가 나온게 89년의
일이다.

전직 대통령 2명이 형사피고인으로 출정한 "세기의 재판"에 국민의 관심이
쏠이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방청권을 얻기 위해 법원앞에 시민들이 밤을 새며 줄을 서는 것도
이상할게 없다.

또 법원당국이 이들 행령에 심부름센터 직원이나 암표상인들이 끼어 드는
것으로 막기 위해 실명을 확인하는 것도 1차공판때의 소란사태를 감안할때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요는 방청권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우리 대립정의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협소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가 이같은 이상스런 현상을 빚었다고 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