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은 어디까지나 보옥의 병이 부처님의 은덕으로 나아간다는
입장이었고, 보채는 그러한 대옥의 의견에 대해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반박하였다.

"부처님은 참 바쁘시겠어.

이 세상 온갖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야 하니 말이야.

여기 중국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섬라 (오늘의 타이)에 사는
사람들, 저 동해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 그외 각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돌보시느라 여기저기 동분서주 하실게 아니냐 말이야.

사람들의 문제가 어디 병뿐이겠어?

혼사 문제도 부처님이 해결해주어야 할 거 아냐.

부처님은 대옥의 배필을 누구로 정할까 지금 궁리하고 계실 거야.
호호호"

보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리자 다른 사람들도 허리를
구부리며 웃었고, 대옥은 발끈해져 문발을 들추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번에는 이환이 입을 열어 자기 의견을 말했는데, 지금까지 나눈
내용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때도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둘 다 중같지는 않았어.

한쪽 발을 저는 그 사람은 중이 아니라 도사 같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보옥도령과 희봉 동서가 나아가는 것은 부처님의 은덕에다가
옥황상제의 도움까지 합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거야"

한편, 보옥과 희봉의 병이 나아가는 동안 가운은 더 이상 그들이 누워
있는 왕부인의 방을 출입할 수 없게 되어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가운이 그 방을 출입하면서 시동들로 하여금 교대로 환자들을 지키도록
할 때는 보옥의 견습시녀인 소홍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제 대관원으로
들어와 나무 심는 일만 하게 되니 소홍을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소홍 역시 왕부인의 방을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 가운을 볼 수 없게
되자 가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가운이 가지고 있었던 초록 비단손수건이 일전에 소홍 자기가
잃어버린 손수건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손수건 생각이 그렇게 나는 것은 그것을 핑계로 가운을 직접
찾아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홍은 가운을 찾아가서 그 손수건이 혹시 자기 손수건이 아닌가
확인해보는 장면을 얼마나 자주 머리 속에 떠올렸던가.

"가운 도련님이 이렇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지.

나의 말에 가운 도련님은 또 이렇게 대꾸하겠지.

그러면 가운 도련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할까,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대답할까"

이런 끝없는 상념들 속에서 소홍은 스스로 얼굴을 붉히곤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