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부터 즐기던 산과물이 30년을 넘게 내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본래 원효로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물과 친하게 지냈다.

지금의 용산 전자상가자리는 온통 미나리 밭이어서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천둥벌거숭이로 헤엄을 치다가 급기야 국민학교 4학년 경에는
지금의 원효대교쯤에 있는 교각 13번째쯤에서 (여의도 공군 비행장
때문에 건설한 철도침목으로 놓은 임시다리)놀고는 하였다.

그때는 물살이 세서 서부이촌동이나 지금의 전철다리 쪽에서 출발을
하면 급류에 흘러 13번째 쯤 되는 교각에 닿고는 하였다.

중고등 학교때부터 수영반 등산반을 넘나들고 그 취미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강개발로 인한 수상스포츠가 유행하던 80년대 위드셔핑을 하던중
광나루 이웃 Club House가 송강카누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카약 리버리프팅을
배웠다.

고등학교때 단양에서부터 한강까지 나룻배에 먹을것과 잠잘것을
준비하고 흘러내려오고 싶던 꿈이 나이 40이넘어서야 실현될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카약킹의 코스로는 한탄강 내린천 평창강 정선동강등
여럿이 있으나 차나 걸어서 접근할수 없는, 카약이나 고무보트로만
접근할수 있는 코스로는 정선에서 영월에 이르는 아우라지 동강이
제격이다.

평창을 지나 정선읍에 들어가기 전 광하교에서 시작되는 카약킹은
신동운치 가정 미탄 마하 문산리 어라연 섭사 영월삼화리까지 약 3okm에
이르는 산태극 수태극의 비경중의 비경이다.

강가에 납작 업드려 있는 듯한 외딴 농가가 있는가 하면 200m도
넘을 수직 석회암 절벽이 강양안을 에워싸고,어쩌다 산삼케는 심마니
들이나 지날법한 전인 미답의 계곡과,때로는 하얀 백사장에 새들의
발자국만 나있는 동강을 나는 한없이 사랑한다 흰모래와 강자갈, 그리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암반의 강바닥을 가진 동강은 한국이 자랑할수
있는 아직오염안된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급격한 강양안에는 소나무와 침염수 활엽수로 전형적인 한국산의
임상을 보이며 계곡을 매우는 매미소리와 파르스름한 자연은 카약커들을
선경으로 몰아간다.

아침이면 물안개위로 떠오르는 물새떼와 오리떼와의 쫓고 쫓기는
놀이, 단풍철이면 온산의 단풍이 물속으로 드리워진 절경하며, 비오는
날에는 비오는 날대로의 운치, 물위로 점점히 떨어지며 무수한 동심원을
그리는 빗방을 파문, 빰을 때리는 비의 간지러움, 그강을 나는 잊지못한다.

90년이었던가 영월 다리가 떠내려간 장마뒤의 동강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나무끝 가지에도 비닐이 걸려있어 그해 수해의 강도가 어떠했는가를
알려준다.

그해 추석을 몇일 앞두고 동강을 갔다.

미탄 못미쳐 밤이 어두워 강가에 캠프를 치고 장남삼아 던질 릴
낚시에 양어장에서 넘쳐나온 송어들을 잡을수 있었다.

낙시시작 1시가만에 팔뚝만한 송어 8마리를 동태 썰듯 토막을 내어
모닥불 옆에서막장에 찍어먹던 맛은 지금도 혀끝에 선하다.

또한 강가에서 심마니를 만나 철이 지나 끝이 펴져버린 송이벗을
양파주머니 반정도를 사서 강을 타고 내료오며 송이버섯 트림을
할 정도로 초고추장에 날 송이를 찍어 먹던 그맛도 지금 생생하다.

귀청을 때리는 듯한 급류소리, 온세상 정막을 다 간직하고 있는 소,
유유한 강줄기이런 것들의 연속인 동강을 그래서 매년 여름 가을이면
잊지못하고 찾는다.

친구 성빈센트 병원 의무원장 조대행박사, 후배 화인방사장 박일화,
과곡후배 한상규 킬리만자로 대표, 산꾼 김경태군이 나의 카약동료이다.

세상 만사를 잊고 강물위로 흐르때면 나는 정말 행복에 겨워한다.

이나이에 이런 격렬한 운동을 할수 있게 해준 건강한 몸과 마음에
대한 감사, 주말을 즐길수 있는 동료와 여유, 이런 자연을 안겨준 국토에
대한 고마움, 그래서 나도모르게 노래가 나온다.

눈이 올라나 비가올라나 억수장마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모여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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