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부스럼투성이인 중은 위로 치켜올라간 기다란 눈썹에 큼직한
주먹코를 하고 있었다.

눈썹 밑의 두 눈은 샛별같이 형형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몸에 걸친 장삼은 해질 대로 해져 있었고, 짚신은 너덜너덜해져
발가락들이 비어져나와 있었다.

절름발이 중은 진흙탕에 뒹군 사람처럼 얼굴과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세수나 목욕같은 것은 아예 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정은 그 중들의 몰골이 흉측하여 점 꺼리는 태도로 무뚝뚝하게
물었다.

"두 분 스님은 어느 절에서 수행하고 있는지요?"

그러자 부스럼투성이 중이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어느 절에서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아실 필요도 없고
그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오.

우리는 이 앞을 지나가다가 댁에 우환이 있는것 같아 들렀을 뿐이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집안에 미친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둘이나
있소.

온갖 약을 써도 낫지 않고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병세는 더욱
악화되기만 하오.

스님들은 무슨 신통한 처방이 있으신지요?"

절름발이 중이 방안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이 방안에 이미 처방이 있는데 우리에게 처방을 물으시다니요?"

"그레 무슨 말씀입니까?"

가정도 중을 따라 방안을 들러보았지만 죽어가고 있는 보옥 주위에
슬피우는 사람들만 모여 있을 뿐이었다.

"일제사숭, 이료원질, 삼지화복"

중들이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가정은 보옥의 목에 걸린 통령보옥 생각이 났다.

지금 중들이 외고 있는 구절은 바로 통령보옥 뒷편에 적혀 있는
글귀가 아닌가.

첫째 재앙을 물리치고, 둘째 질병을 고치고...

그 통령보옥의 구절대로라면 보옥이 저런 액운을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 구슬은 이미 영험을 읽어버렸나 봅니다"

가정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구슬은 색정과 목욕으로 인하여 잠시 영험을 잃은 것이지 영영
잃은 것은 아니오.

그 구슬을 가져와 보시오.

우리가 그 영험을 회복시켜드리리다"

중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도력을 모으려는지 두 눈을 감은채 입속으로
뭐라뭐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가정은 숨이 넘어가는 보옥의 목에서 구슬을 끌러 중들에게 건네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