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인은 보옥과 희봉을 자기 방으로 옮겨놓고 정성스레 간호하였다.

보옥과 희봉은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운 중에 헛소리를 하고 그러다가
고함을 지르며 하루에도 몇번이고 발광을 하였으므로, 왕부인은 가운에게
부탁하여 시동들로 하여금 두 사람을 교대로 지키도록 하였다.

다른 시녀들은 무서워서 근처에도 잘 오지 못하였다.

대옥과 보채는 매일 와보았으나 훌쩍이며 울다가 돌아가기 일쑤였다.

대부인과 형부인,설부인 들도 왕부인과 더불어 병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였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다.

그 부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우느라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원근 각지에서 용하다는 의원들, 영험이 있다는 중과 도사들, 무력이
세다는 무당들, 심지어 천리안을 가졌다는 복술인들까지 영국부로
불려왔으나 두 사람은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센 귀신이 든 경우는 생전 처음 보았소"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물러갔다.

"형님,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용하다는 사람들은 다 불러보았지만 아무 효험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람들 불러오는 일은 그만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옥의 아버지 가정이 한숨을 내쉬며 가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가사는 보옥의 생명도 생명이려니와 자기 며느리 희봉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흘동안 물 한 모금,미음 한 숟갈 먹지 못한 보옥과 희봉은 이제
발광할 기력도 잃고 실낱 같은 숨만 내쉬고 들이쉬고 하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식구들은 가정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의 장례에 쓸 물건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부인은 보옥의 수의를 만들면서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보옥보다
대부인이 먼저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인의 건강을 염려하여 장례 물건 챙기는 일에
대부인이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려 했으나 그냥 뒤로 물러나 있을
대부인이 아니었다.

"수의는 만들더라도 관은 만들지 말아라"

대부인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참으로 모순되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가정은 대부인 몰래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의 관을 짜도록 하였다.

온 집안이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있는 동안, 조씨는 아들 가환을 가만히
안방으로 불러들여 보옥과 희봉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가환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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