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와서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같다.

1월중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15억달러로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가 하면 수출신용장 증가율이 수입승인서 증가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엔저 현상의 지속으로 엔고로 인한 반사이익이 사라진데다 수입개방이
본격화됨에 따라 수입수요는 계속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역외수지 적자도 해마다 늘고 있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도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채총액은 7백80억달러인데 경상수지 적자가
이런 추세로 간다면 멀지 않아 외채 총액이 1천억달러에 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선 전국 어음부도율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부동산과 건축경기가 없다 보니 시장경기가 죽은데다 개방화에 따른
중저가품의 수입급증과 소비자의 기호변화에 따라 중소기업과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건축과 부동산경기 침체는 자본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쳐 주식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은 되지 않는데다 세금부담은 늘어나고 장바구니 물가마저 올랐으니
불평이 없을수 없다.

그러면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

그 하나는 우리경제가 지난 몇년 동안의 호경기에서 하강국면으로 진입하고
있고 이로 인해 기업이나 가계의 어려움이 생긴다고 볼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기는 수출과 설비투자에 의해 주도되는데 수출이 금년에
들어오면서 점차 둔화되고 설비투자도 주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경기가 지난해 보다는 상당히 둔화될 것은 분명하다.

경기란 항상 좋을수만 없고 경기가 좋으면 다음엔 반드시 경기가 나쁘게
마련이기 때문에 경제의 어려움이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경기후퇴에 기인
한다면 사실 크게 우려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처럼 경제성장률이 8%가 넘는 것은 우리 경제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국제수지 악화, 인플레 유발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경기후퇴로 성장률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나쁠 것은 없고 이는
국제수지 개선이나 물가안정을 위해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제의 어려움이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하강국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유에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서 규제완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으나 국민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금융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등의 충격이 최근에 와서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특히 부동산 실명제는 부동산및 건축경기의 침체를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자본시장에도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과 건축경기가 없으니 경기가 좋을수 없고 이는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업자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금융 실명제나 부동산 실명제는 자원배분의 왜곡을 없애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며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임에는 틀림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개혁조치에 따른 사회적 비용, 예컨대
경기침체의 장기화, 기업의욕의 감퇴, 자금의 퇴장및 국내투자 기피 등이
우리가 감당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에 있다.

모든 개혁조치는 사회적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며 사회적 비용을 과대
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결코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특히 개혁조치가 그 사회의 기본 경제질서에 관련되는한 그 영향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제정책의 성공여부는 정책당국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주체가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장경제에서의 정책이란 일방통행이 될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정책당국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주체의 의지라 하겠다.

아무리 정책목표가 바람직스럽고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이 외면을 하면 성공할수 없다.

따라서 개혁이 성공을 하려면 개혁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고통을 분담하는
국민적 자세도 중요하지만 개혁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국민이 수용할수
있는 수준에서 억제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