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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순박사(60).

현재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겸 연세의료원 원장이다.

김박사는 1993년 3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환자의 권리장전''을 마련,
환자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의료인은 환자를 섬겨야 된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는 의료서비스의 질향상을 위해서는 의료인들의 능동적인 의식변화와
함께 의료수가제 개선등도 함께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부총장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후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과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미네소타주립대학교등과 이스턴병원등지에서 석사과정
및 인턴과정등을 마쳤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부총장은 대한 예방의학학회장(1985.11~87.11) 한국역학회 회장(1987.12~
91.11)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1988.3~현재)직을 맡는등 우리나라 의학회및
국민보건운동의 활동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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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대곤 편집기획위원 ]]]

-김부총장께서는 우리나라 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환자의 권리장전"을
제정하여 연세의료원에 적용함으로써 일찍이 "사랑이 가득한 병원"운동을
펼치셨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는지요.

<> 김부총장 =1992년 8월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취임하자
주위의 지인들이 병원의 불친절에 대한 불만을 들려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된다, 의사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등 이루헤아릴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의사와 간호사등 연세의료인들의 의식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환자
에게 도움을 주는 원칙, 환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하는 원칙등 4개원칙과
10개항의 환자권리를 존중하는 장전을 제정해 대내교육용으로 선포했습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의사들이 환자를 섬겨야 된다는 선언을 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웠을텐데요.

<> 김부총장 =나도 그점이 우려돼 일방적 선언을 하지 않고 의사회의
각 과장회의를 통해 권리장전안을 미리 검토해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그랬더니 의외로 호응을 보였습니다.

다음해부터는 "환자중심병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각종 개선할
사항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침대만 하더라도 환자가 올라가기 어려운 점은 고려하지 않고 의료진이
진찰이나 치료하기 쉽도록 높게 설계되어 있으며, 환자의 입장이 아니라
의료진의 입장에서 질병위주로 진료과목을 분류해 어디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 이해가 되지 않는등 환자의 권리가 침해된 사례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환자중심의 병원으로 전환시키려면 단순히 선언만으로는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텐데요.

<> 김부총장 =당연하지요.

그래서 6,000여명의 연세의료원 전체 인원중 환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4,000여명을 대상으로 60명씩 2박3일간 8개월에 걸쳐 교육을 시켰습니다.

교육내용은 인간으로서의 환자에 대한 이해와 전화받는 법 인사하는 법,
심지어 웃는 법등 친절교육을 시켰지요.

처음엔 병원이 무슨 백화점이냐며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만
나를 비롯한 간부부터 교육을 받으니 할 수 없이 따라오더군요.

일단 교육을 받고나니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단계로 각 부서단위로 친절점수를 매겨 부진한 부서는 재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각 부서별로 책임자를 선정해 자발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이나 친절
캠페인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연세의료원의 의식변화가 일어난 것같아 구체적으로 환자
중심의 병원이 될 수 있도록 시설보수등 눈에 보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구도 환자가 편안하게 앉을 수있는 것으로 바꾸고 병원내 색상도 흰색
일변도에서 탈피해 초록 분홍 보라등으로 다양화시켰습니다.

접수창구의 대기시간도 종전 약1시간 30분에서 30분으로 줄이고 주차장에는
직원차량을 한 곳으로 몰아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기 저기에서 병원이 달라지고 있다며 고맙다는 전화와 편지등이
쇄도했습니다.

그러나 연세의료원 건물이 30년전에 설립된 것이어서 근본적으로 설계를
변경하기 전에는 환자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 착공해 1999년 5월까지 새로운 의료원을 지을 계획
입니다.

-그러자면 재원조달이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최근 적자운영으로 문을 닫는 병원이 많은 모양인데 그같은 환자중심의
병원으로 전환시키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 김부총장 =그렇습니다.

우리병원도 수익률이 1~1.5%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현재의 의료수가가 최소한 30%는 인상돼야 현실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수가의 뒷받침없이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는데는 한계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료의 질이 좋다하더라도 의료서비스수준이 낮으면 환자
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료인들은 의료수가인상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서비스를 개선함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통해 인상되도록 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전에는 의사만큼 교육받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환자에 비해 교육
수준도 월등히 높고 절대적인 전문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위에 군림할 수 있었고 그 관계도 의료의 시혜적 차원에서
가부장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의료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지식이 있거나
돈많은 사람이 환자로 오기 때문에 이들은 같은 전문가 혹은 인격체로서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환자를 위해 서비스할 것을 요구하는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의사수를 늘려야 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 김부총장 =위험한 발상입니다.

의료기술은 분명히 전문영역입니다.

의사수를 늘려 경쟁관계를 만들면 수입이 줄어들게 되고 이에 대한 보전책
으로 과잉진료나 환자를 위협해 의료수요를 창출할 우려가 있습니다.

실례로 미국에선 산부인과 의사가 많아 40세이상의 여성에겐 자궁이 있으면
각종 자궁질환이나 일으킬뿐 백해무익하다며 자궁적출수술을 유도해 미국
40세이상 여성의 약30%가 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부인과 의사가 너무 많아지면 수입보전책으로 태아의
성감별을 해 미리 유산시키는 비인륜적 행위가 자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비의 균형이 깨져 심각한 사회적 긴장관계가 이루어질수
있습니다.

-의사수가 많아 과잉진료가 일어날 우려도 있지만 최근 산부인과 외과등
일부분야에서는 의사수가 모자라 전문의간 균형이 깨지고있어 문제라면서요.

<> 김부총장 =이른바 3D기피현상이 의료계에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그 이유만도 아닙니다.

외과분야는 힘이 들기때문에 기피하기도 하지만 외형상의 높은 의료비에도
불구하고 보험의료수가체계가 원가분석을 해보면 별로 남는게 없다는
것입니다.

힘이 든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요소는 소송사건이 많은 것입니다.

어려운 수술을 간신히 마치고 난 상황에서 혹시 불가피한 부작용이라도
생겨 송사에 말려들면 명예나 소득면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기 때문입니다.

의료분쟁에 대한 합리적이고 냉정한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양의학과 한의학간의 대립이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환자로선 한의나 양의가 중요한게 아니라 환자의 질병을 치료해주는게
중요한 관심사일테니까요.

<> 김부총장 =양의와 한의간의 싸움이라기 보다 한의사와 약사간의 싸움
이라고 봐야 겠지요.

서로 한약(보약)조제권을 갖겠다는 것 같은데 국민이 선택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양의학은 인간을 물질적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한의학은 철학적 정신적 입장에서 접근한다고 봅니다.

인간은 이 두가지 요소가 모두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의학은 하나입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일원화가 이뤄져야 될 것입니다.

다만 전문의 단계에서 구분하면 될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