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속고, 서로가 속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긴 하다.

하지만 국민 전체가 속고 속이는 최고의 대목은 역시 선거가 아닌가 한다.

항상 지내놓고 보면 이번에 겪은 잘못을 다음번부터는 고치리라 믿는 것이
국민이다.

하나 막상 맞닥뜨려 다음 선거 양상을 들여다 보면 똑 같이 실망이 되풀이
되고 겁까지 난다.

한달 앞으로 다가선 4.11총선도 불행히 예외가 아니다.

크게 두가지 점때문에 어느때 보다 타락선거가 걱정된다.

하나는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란 인식에서 여-야 다같이 마치 전부를 걸듯이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통합선거법 적용 첫 총선으로서 8,400만원 선거자금 상한을
지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공통 인식이다.

유명무실한 실정법의 전형이던 미국의 금주법과 다를게 없어 자칫 전원
당선무효와 전원 불처벌중 택일이 불가피해 뵈는 실정이다.

그렇잖아도 쌓인 고질이 가시지 않고 그대로 엉겨붙어 걱정이다.

지역감정과 각종 연고의 총동원, 거짓공약 남발, 유권자의 금품 요구와
집단민원 압력, 후보측의 모금강요, 저질 인신공격, 관권개입등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다.

그 위에 처음 고개드는 양상도 있고 갈수록 뚜렷해가는 징후도 겹쳐 있다.

새 양상으론 소위 역관권 개입을 들수 있다.

집권당 만의 프리미엄이던 관권지원이 지자제 실시 이후 야당에까지 분산된
현상이다.

중앙-지방 관권간 견제균형이이뤄질 경우 발전적인 조건이 될수도 있다고
보아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독소 가운데 선거권을 무기로 삼는 지역이기주의 경향이
있다.

따지자면 무책임한 입후보자의 불발공약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그 양쪽 모두가 대의정치가 갖는 약점이어서 발본하기는 어려운 속성이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결정적인 것은 특히 막판 며칠에 기승을 부린다는
금품거래 매표다.

김영삼정권 최대 강점이라고 할 돈안드는 선거의 결실은 통합 선거법이었고
그 1차 효험을 대구등 보궐선거에서 톡톡히 맛보았다.

가령 누구라도 6.27선거의 고배를 만회하려는 집념에서 역사적 개혁입법을
되물리려 획책한다면 정권 이상으로 나라에 손실이 크다는 사실은 명백한
일이다.

어차피 지키기 어려울 바에야 10억도 20억도 좋다는 돈 선거로의 희귀만은
여당이 솔선해 막아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당의 정강과 선거공약, 그리고 그것을 담당할 개별
후보자의 인품과 능력이다.

그러나 이미 내세운 각당 공약을 뜯어보나, 철새가 가득찬 후보로 보나
색깔도 우열도 없다.

상호 모방이지 소신은 드물다.

그런 속에도 한줄기 흐름은 있다.

30대를 주축으로 한 젊은 일꾼들이 각당의 기획-홍보등 선거운동 적극참여
현상이다.

이를 정당이나 젊은 자원자 자신들이 청년 유권자에 대한 단순 응대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그 청순성을 부패추방, 공명선거 실현의 계기로 삼으려
할 때 민주-선진 한국의 구현은 손에 잡힌다.

소탐대실의 산 전례를 제발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