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누구겠어요? 보옥이지. 보옥이랑 희봉을 같이 처치하면 이
집 재산이 몽땅 가환이에게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까짓 사례금이 문제겠어요? 평생 가환의 수양어미로 모시고
호강을 시켜드릴 수도 있지요"

조씨의 말에 마도파의 눈가와 입가에 싸늘한 웃음기가 배어들었다.

조금 전에 대부인으로부터 보옥을 위한 공양 기름으로 달마다 백사십
근을 받기로 한 마도파가 아니던가.

그러나 조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까짓 기름 얼마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 밑천 잡아도 톡톡히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 우선 이렇게 해주시오.

희봉 아씨 건만 들었을 때는 사례금으로 은 오백냥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보옥 도련도 부탁을 하니 은 천냥은 받아야겠소.

그러니 은 오백냥은 선금으로 내어놓고 나머지 은 오백냥은 차용증서로
써주시오.

일이 잘 되기만 하면 작은 마님 말마따나 더 많은 사례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조씨는 마도파가 제시하는 사례금의 액수가 꽤 많다고 여겨졌지만
일만 성사되면 은 천냥이 문제이겠는가 싶어 흔쾌히 동의하였다.

조씨는 비상금을 넣어두는 궤짝에서 은 오백냥을 꺼내어 마도파에게
건네주고 은 오백냥을 빌린 것처럼 차용증서까지 써 주었다.

마도파는 번쩍거리는 은전들을 돈주머니에 쓸어넣고 조씨의 손도장이
선명한 차용증서를 품속에 넣으면서 자기도 긴장이 되는지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번이고 한숨을 쉬고 난 마도파는 허리춤에서 종이 인형
열 개를 꺼내었다.

그 인형들은 한결같이 험악한 인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종이 인형의 머리에 어떻게 붙였는지 흰
머리칼들이 몇 줌씩 붙어 있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조씨가 그 흉칙한 모습에 기겁을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재앙을 불러오는 귀신들이에요.

이 귀신들을 말이죠, 바로 이 두 인형에다가 다섯 개씩 나누어 덮으면
되는 거죠"

그러면서 역시 종이로 만든 인형 둘을 더 꺼내었다.

그 인형들은 그런대로 사람의 형용을 하고 있었다.

"이 인형들에다가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적고 귀신들을 각각 다섯
개로 나누어 이 인형들과 함께 두 사람의 침대 밑에 넣어두면 되는
거죠.

다섯 귀신이나 들러붙었으니 제 아무리 장사라도 배겨낼 재간이 없죠.

그런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몰래 침대 밑에 넣어야 해요.

그리고 중간에 겁을 먹고 그만 두면 열 마리의 귀신이 오히려 작은
마님을 덮칠 거니까 알아서 해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