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보옥의 얼굴을 본 대부인은 기겁을 하였다.

보옥은 다른 사람들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자기가 실수를 해서 촛대를
넘어뜨려 화상을 입은 것이라고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병명으로 넘어갈 대부인이 아니었다.

대부인은 왕부인과 희봉을 비롯하여 어제 보옥의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보옥을 그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물어 호되게 꾸짖었다.

그 바람에 집안 분위기가 온종일 무겁기만 하였다.

하루가 지나 마도파가 대부인을 뵈러 영국부에 들렀다.

마도파는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절간에서 일하는 일종의 무당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마도파는 대부인과 친하여 영국부에 종종 들르면서 보옥을 자기
수양아들로 삼겠다는 등 수작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것은 보옥의 목에 걸려 있는 통령보옥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마도파가 대부인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서 마침 그곳에 와 있던 보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얼굴이 왜 그렇게 되었어요?"

"촛대를 넘어뜨려 촛농에 데었어요"

"아이구, 세상에. 이리로 와봐요"

마도파는 보옥을 가까이 부르더니 보옥의 얼굴에다가 손가락으로 무슨
글자 같은 것을 그리면서 뭐라뭐라 입 속으로 주문을 외었다.

그리고는 보옥의 얼굴을 두 손으로 꼭 감싸안아주면서, "이제 곧 나을
테니 안심하세요.

이건 지나가는 재앙에 불과하니까요" 라고 위로하였다.

대부인도 가만히 안도의 함숨을 쉬었다.

그러나 잠시 후 마도파는 다른 종류의 한숨을 쉬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건 지나가는 재앙에 불과하지만..."

마도파의 중얼거림에 묻어 있는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대부인이 다그쳐
물었다.

"또 다른 큰 재앙이 닥쳐올 거란 말인가?"

마도파가 눈을 지그시 감고 뜸을 들이고 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부처님 경문에 보면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적혀 있지요.

귀한 집안의 자제들은 태어날 적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잡귀들이
심술궂게 따라붙는다고 하였지요.

그래서 그 잡귀들은 틈만 나면 귀한 집 자제들을 괴롭히지요.

어떤 때는 장난처럼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손톱으로 꼬집기도
하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정말 단단히 벼르고
덤벼들기도 하지요.

그런 경우에 잡귀들을 잘못 다루었다가는 생명이 위중하게 된답니다.

이번에 보옥 도련님이 얼굴에 화상을 당한 것은 잡귀들의 장난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다음 번에는 잡귀들이 어떤 무서운 짓을 저지를지 모른단
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