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총인구 9억2,000만명에 1인당 GDP는 300달러.이러한 인도의 모습은
흔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비유됐다.

인도는 중국에 버금가는 시장규모, 우수한 인력, 저렴한 임금 등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독립이후 자립자존의 원칙아래 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91년7월에 발표된 경제개혁조치로 인도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세계 각국의 이목은 이 "숲속의 미녀"에게 집중되고 있다.

자유화-개방화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인도의 경제개혁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91년 1.1%였던 경제성장률이 94년에 6.2%로 크게 높아졌으며
인플레이션율은 13.5%에서 10.0%로 안정됐다.

91년중 10억달러로까지 떨어져 위기감을 고조시켰던 외환보유고도
94년에는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이제 인도를 중국과 함께 세계 10대
신흥시장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인도의 경제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인프라(사회간접
자본) 확충, 농업개혁, 교육확대, 빈민구제 등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적지 않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할 정부가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려
저소득층에 대한 식량보조나 이자 지불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인도가 이러한 문제들을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해결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민주주의의 전통으로 그러한 다양성과 복합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인도의 특성은 외국 기업들에 시끄럽고 불안한 모습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다양함에 익숙지 않은 우리 기업들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인도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도출해
낸 사항은 쉽게 바뀌지 않는 장점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오는 4월의 총선을 앞둔 요즈음 신경제정책을 추진해 온 라오 정부가
퇴진할 경우 경제개혁 노선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서벵갈주가 외국인투자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인도의 내일을 이끌어 갈 신세대들이 스타TV,M-TV등의 영향으로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에 깊이 젖어들고 있음을 볼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총선 결과가 어떻든 개혁과 개방을 근간으로 하는 개혁정책 자체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립 이후 50여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국민적 합의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기 때문이다.

인도가 지속적인 경제개혁을 통해서 외국인투자를 끌어들이고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여간다면 적어도 2000년대 초까지는 연평균 5~6%의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넘나드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성장활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뛰어난 비즈니스 인프라, 우수한 전문인력 등으로
인해 사업환경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들보다 유망하다.

특히 기업의 국제적 마인드, 각종 상거래에 관련된 법률과 제도,
금융-회계, 영어사용에 따른 의사소통의 용이성등 비즈니스 인프라에 있어
인도는 여타 개도국의 추종을 불허한다.

깨어난 숲속의 미녀,머리는 21세기에 있고 꼬리는 19세기에 두었다는
거대한 용 인도가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도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우리 스스로가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안될 때다.

인도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이유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김영삼 대통령의 인도방문을 계기로 한-인도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되고
경제협력 증진방안이 마련되는 등 기업들의 대인도 진출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