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이 일을 어찌해. 이런 변이 있나"

왕부인이 안절부절못하며 보옥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들어 살펴보았다.

"얘들아, 빨리 찬물에 수건을 적셔 가지고 오너라"

시녀들이 물수건을 가지고 와서 보옥의 얼굴애 묻은 촛농을 닦아주었다.

"아! 아!"

시녀들이 촛농을 한점 한점 닦아낼 때마다 보옥은 화상의 아픔으로
신음을 토하였다.

왕부인이 가환을 크게 꾸짖었다.

"아니, 이 녀석아, 어쩌자고 촛대를 쓰러뜨려? 시녀들을 나무라고
들들 볶더니만 도리어 자기가 욕먹을 짓을 해?"

"글을 쓰다가 그만 팔꿈치가 촛대를......"

가환이 어줍잖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왕부인은 가환이 일부러 촛대를 쓰러뜨린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희봉은 가환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왕부인보다 한단계 더
나아갔다.

"환이 너, 덤벙대는 꼴이 꼭 싸움닭 같구나.

그래 가지고야 어찌 점잖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니?

조씨도 그렇지. 평소에 자식을 잘 가르쳐놓아야지"

조씨는 가환의 생모인 가정의 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희봉이 말한 싸움닭이라는 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왕부인이
이번에는 조씨를 불러 나무랐다.

"마음이 시커먼 이런 막돼먹은 놈을 낳아놓기만 하면 뭐해.

나 몰라라 하고 팽개쳐두고만 있으니, 그래 가지고도 어미라고 할 수
있어?

나, 몇번이고 참고 참다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알아듣겠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제 세상 만난 것처럼 날뛰지 마"

왕부인의 어투에는 남편 가정의 애정이 조씨에게로 쏠리고 있는데
대한 시기와 질투가 묻어 있기도 하였다.

조씨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가환이 워낙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대꾸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가환의 팔을 낚아채서 끌고 나갔다.

보옥의 얼굴은 왼편 볼 전체가 촛농에 데어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있었다.

"아유, 저걸 어째.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

왕부인이 보옥이 안쓰러워 연신 혀를 차고 시녀들이 화산재를 물에
개어 만든 까만 고약을 가지고 와서 보옥의 얼굴에 조심조심 발랐다.

보옥의 얼굴은 한쪽이 시커매져서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가 이애 얼굴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지?"

왕부인은 대부인의 성화가 걱정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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