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근 <농촌경제연 수석연구위원>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70년대부터이다.

그 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마도 1987년부터인 것으로
통계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이 당시에는 연간 40만~50만t씩 수입하여 오다가 90년대에 들어서는
연간 100만t내외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래 그림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매년 연례행사화 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을 두고 최근에 와서
마치 새로운 사실인 양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최근 북한의 식량난을 두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정부와의 시각차가
현저한 것은 지난 해의 대홍수로 인한 곡물감소가 어느정도인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나 문제는 북한의 식량지원에 대한 명분싸움에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인도적, 동포애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별다른 이의 제기는 없으나 문제는 북한 당국의
대남 비방과 남한배제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의 식량사정이 이토록 어려워진 것은 크게 두가지로
설명되는데 그하나가 공산주의 집단영농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난 수십년간 북한체제의 종주국인 구소련이나
동구권의 몰락, 그리고 중국의 대북지원 중단 등에서 비롯된다.

특히 90년대 초기부터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기상재해까지 겹치게
되면서 식량난이 더욱 가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북한의 식량은 얼마나 부족한가.

95년 기준 북한 인구는 약 2,300만명으로 남한의 절반수준이다.

약 4,450만명의 남한 인구의 연간 곡물소비량은 약 2,000만t으로 만약
북한의 경제수준이 우리의 경제수준이라면 적어도 연간 곡물소요량은
1,000만t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식량소요량 판단기준은 그 나라가 처해 있는 경제수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럴 경우 북한의 경제수준은 아마도 남한의 60년대와 비교할만 하다.

따라서 이 수준에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곡물은 어림잡아
600만~650만t으로 추정되며 곡물생산량도 연간 평균 400만~450만t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의 산정근거로는 북한의 현 경지면적이 약 200만정보인데다
이중 식량재배 면적이 140만~160만정보로 정보당 수량이 남한의 절반
수준인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식량감소는 집단영농체제의 모순에 따른 농민들의 근로의욕
저하가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이며 이로 인한 구조적 부족량이 90년
이후 매년 약 200만t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3년간 연이은 흉작으로 인하여 연간 부족량이 추가로
100만t이나 증가함으로써 전체 곡물감소량이 지난 몇년간 매년 300만t이나
급증한 것이다.

이에 당황한 북한은 급기야 지난해 서방세계에 긴급 식량지원요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급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식량비축재고가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현재 북한의 비축미는 약 100만t 내외로 감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구조적 부족량 200만t중 약 100만t은 수입에 의존하고,나머지
100만t은 "애국미"의 강제 징수 또는 "하루 두끼 먹기 운동" 등으로
절약하는 방법으로 부족량을 메워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하루 한끼 절약 운동은 적어도 120만명이나 되는 군인 그리고
소위 상류층에 해당하는 일부 당.정 관료 등 특권층의 대부분은 제외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수입에 의존해온 100만t도 대부분 중국 정부의 무상지원에 의한
것으로 이것마저 중단됨으로써 북한의 식량난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식량확보를 위해 이번에도 지난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협상과정에서 보았듯이 이때 축적된 노하우를
식량구걸행각에 다시 활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다.

그러면 이처럼 해마다 부족한 식량난을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 것인가.

아마도 사회주의체제를 계속 고수하는한 해결방도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에너지 부족에 따른 공장가동률 저하 등 전산업의 침체로
경제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다 외화부족, 대외 신용상실, 대외
무역규모의 급감, 그리고 비료 농약등 농자재 공급을 위한 원료수입 등의
어려움으로 농업생산성도 크게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지난해 100년만에 나타난 대규모 홍수
피해까지 겹쳐 이를 복구하는데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금년도의 농사도 불투명하며 극히 비관적인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북한은 식량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한을 배제한
서방세계와의 수교우선원칙을 철회하고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를 통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원칙하에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지난해에
수해로 인해 농지기반시설이 파괴되고 토사유출로 인한 농지의 복구를
위해 남한의 대북 수해복구 지원과 함께 부족한 비료 농약 등 농자재의
무상지원을 통해 북한 농업을 회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기아에서 해방시키는 근본적인
처방은 집단농장체제의 개인농체제로의 전환을 포함한 북한 체제의
총체적 개혁.개방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현 국유제를 사유제로 전환하는 토지소유 구조를 바꿔
농업생산성을 높여야만 북한 식량난의 획기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로서도 북한에 대한 일과성의 식량지원은 어차피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기 때문에 일시적 지원보다는 북한 농업의 근본적인
회생을 위한 지원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영농기술의 대북 지원과 협력, 그리고 우수품종의
대북 지원등을 통하여 북한 농업이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영농기술 지원은 우리 정부가 조만간 경수로사업을 위해 북한
지역에서 제한적인 활동을 할 것이므로 농업부문도 북한의 개마고원 등
일정지역에 시범농장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설, 우리 영농기술자를
파견해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북한의 후진농업을 선진농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간접지원방식도 제안해 볼 만하다.

결국 북한 농업 회생은 이러한 여러가지 제안들이 수용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