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식 < 경총 조사1부장 >

올해 단체교섭에서는 주당 소정근로시간의 단축문제가 노사간 핵심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민노총이 14.8%의 임금인상요구와 함께 임금저하없는 주 40시간 근로제실시
를 "단협투쟁방침"의 하나로 설정하였고 자동차업계 노조들이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또 한국노총도 97년까지 주 42시간, 2000년까지 주 40시간 근로제실시를
단협개선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계의 동기가 순수하게 주당 총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여가시간을 늘리려는데 있는 것같지가 않다는데 있다.

고용확대에 초점을 두고 시간단축과 함께 임금절하도 수용하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국내 노동계의 "시단투쟁"은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임금소득
증대를 꾀하기 위한 우회전략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초과 근로시간수가 늘어날 것이고 단축시간분에
대한 임금보장등으로 임금소득이 증대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동기야 어떻든 우리나라 근로시간의 변화를 살펴보면 노동계의 요구가
현실적으로 무리한 것임이 자명해진다.

국내 제조업의 주당 총근로시간은 94년현재 48.9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 통계에 의하면 우리와 경쟁상대국인 싱가포르의 94년
근로시간은 49.3시간이다.

85년엔 46.5시간이었으나 10년사이에 6%가 늘어났다.

대만과 홍콩은 94년에 각각 46.4, 44.6시간으로 지난 10년간 2.1, 0.4%
감소하는데 그쳤다.

우리제조업의 경우는 85년에 53.8시간이었으나 94년에 48.9시간으로 9.1%가
감소했다.

지난 10년간 급격한 임금인상과 함께 빠른속도로 근로시간이 단축된 탓에
기업경영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는 얘기다.

근로시간과 관련,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외국에 비해 많은 법정 휴일.
휴가일수이다.

주 44시간제라고 하지만 법정휴가 일수를 공제하면 "근로의무"가 있는
시간은 크게 줄어든다.

법정공휴일(18일), 연차휴가(10일), 월차휴가(12일)등 최소 40일간의 법정
휴일을 고려해 보자.

근로자가 이 40일의 휴일을 사용한다면 주 44시간 근로제라 하더라도 실제
생산작업의무가 있는 시간은 38시간에 불과하다.

근로시간단축이 기업의 임금비용을 증대시키는 효과는 지대하다.

월급제하에서 주44시간제가 주42시간제로 변경될 경우의 임금비용 증대
효과는 6.8%에 달한다.

임금절하없이 소정근로시간이 2시간 단축되는 경우 시간당 임금이 4.8%
상승하고 이에 더하여 초과근로로 처리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추가적 상승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0시간제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임금인상효과가 10%를 훨씬 넘는
것이 아닌가.

근로시간이 경제발전과 함께 단축되어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근로시간단축은 생산감소 임금비용증가 인력난등을 초래함으로써
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노사간에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의 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 여가시간 확대를 위해서는 휴일 근로축소가 선행돼야 한다.

근로자들이 법정휴일휴가를 모두 사용한다면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38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둘째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는 노동력의 수급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부족으로 생산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는 여건에서
무리한 근로시간단축 요구는 노동공급을 독접한 노조의 집단적 이기주의로
비난받게 될 것이다.

사실 최근에 이루어진 자동차업계 중심의 일부 대기업의 근로시간단축은
이들 기업이 비교적 높은 생산성과 비불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한 것이었고, 또 편법적 임금인상방안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노동계의 근로시간단축요구는 이를 수용키 어려운 중소기업을 더욱 곤경에
빠뜨려 국가 기업 근로자에게 도움이 될수 없다.

셋째 근로시간 단축에 앞서 근로시간 운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독일 일본등의 예를 보아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변형근로제도 이용이
확대되고 있다.

근로시간활용의 효율성이 제고되지 않으면 결코 생산성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모한 근로시간 단축투쟁은 지난 10년간의 높은 임금인상의 뒤끝에서
우리기업들을 코너로 몰아가는 악재가 될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문제는 국민경제의 수용능력을 감안하여 일정한 원칙을 갖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