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은 앵앵의 시를 읽고는 그 동안 겪어온 앵앵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느끼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앵앵이 이번에 장생을 만나보게 된다면 마음의 고통은 다시 불 일듯
일어나 일생동안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앵앵은 두 사람을 위하여 현명한 결단을 내렸다고도 볼 수 있었다.

장생은 그러한 앵앵의 심정을 다 헤아려 짐작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있는 앵앵을 떼를 써서 억지로 만나
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장생은 앵앵을 만나보지 못하고 다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향집을 나섰다.

강을 건너려고 강나루에서 막 거룻배를 타려는데 이번에는 앵앵의
하인이 말을 타고 달려와서 장생에게 앵앵의 편지를 전달하였다.

그 편지 역시 시 한 수였다.

이제 먼길 어디로 떠나십니까.
한때는 이 몸도 님의 곁에 같이 있었건만
세월이 더 흘러 전생의 인연 맺어지면
그때나 지난날처럼 지낼 수 있을까.

장생은 그 시를 읽어보고 가슴이 쓰라려오는 것을 느꼈다.

앵앵은 전번 편지에서는 "늙은 모습 다시 님에게 보이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면서도 이번 편지에서는 먼 훗날 장생과 부부의 관계를 맺게
될 날을 아직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다니.

물론 앵앵 자신도 그 꿈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는
하였다.

장생이 앵앵의 그 시를 받아본 뒤로는 다시 앵앵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그렇게 "회진기"는 결말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회진기" 마지막에 작가 원진은 이 이야기가 마치 실화인 것처럼
적고 있었다.

"정원 모년 9월 집사 이공수가 나의 집에 와서 얼마 동안 묵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이공수는 앵앵은 정녕
신비로운 여인이었도다 감탄하며 즉시로 앵앵가를 지어 불렀다"

대옥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앵앵이 마지막으로
장생에게 보낸 시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하다가 그만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대옥은 장생과 앵앵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 이야기 같지가 않고 바로
보옥과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보옥과 자신의 사이도 서로 사랑하지만 끝내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그런 비극적인 관계로 결말이 날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 서러워 대옥은 더 크게 울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