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이 야만인이고 문명인이 문명인인 것은 그의 태생에 연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화의 궁극적 척도가 되는 것은 그곳에서 창조되는 예술이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이 말처럼 한 나라나 민족의 문화수준은
예술의 결정체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건축물 전적 그림 조각 공예품등 유형의 것과 연극 음악 무용 등
무형의 것으로 구체화된다.

예술은 인간의 정신적 심미적 가치를 구현해 내는 극히 주관적인
수단이라고 정의할수 있다.

예술은 그러한 특성 때문에 나라나 지역, 민족이나 종족에 따라
차별성을 지닐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술은 한 나라나 민족의 주체성을 보존하는 매체가 되고 그것을
창조해 낸 주체들에겐 더 할수 없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역사를 되돌아 보건대 그러한 예술의 결정체, 특히 유형예술품들이
다른 나라나 민족의 침략으로 멸실되거나 수탈되는 사례가 무수히
반복되어 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유럽의 유수한 박물관들에 들러 보면 고대문명발상지들인 이집트나
그리스, 중국이나 중동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하는 전시물들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예술품이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라는 의식이
확산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예술품 수탈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직도 불법반출입의 범죄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 70년 유네스코가 "문화재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국제협약"을 채택한 뒤 많은 나라들이 이에 동참한
마당인데도 말이다.

얼마전 상트 페테르부르크주재 일본 총영사가 2,000만달러어치의
러시아 그림과 도자기등 골동품을 밀반출해 가려다 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세계 제일의 졸부가 된 일본인들이 그동안 곳곳을 누비면서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려온 "경제동물"적 근성을 드러낸 단면이라고 해야
할지, 그네들에게 잠재되어온 문화적 열등의식이 표출된 예증이라고
해야 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유네스코협약을 누구보다도 더 숙지하고 있을 외교관의 범죄이고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문화수준이란 외국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갑자기 향상되는게 아니다.

스스로의 예술적 창조가 장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이루어질 때 얻어지는게
문화국의 실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