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동안 인구의 절반이 넘는 2,800만명의 대이동이 있었다고
하니 과연 설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인의 최대 명절임을 실감케 된다.

우리 것을 지키고 전래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는 것은 세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더욱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현행 연휴제도나 나아가 전반적인 공휴일
제도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이번 설 연휴를
의미있게 마무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현행 공휴일제도는 현실에 입각한 것이라기 보다 다분히 정치적
선심정책의 하나로 입안되고 시행되어 왔다고 봐도 좋다.

공휴일 축소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그 필요성 여부를 떠나 일종의 터부를
건드리는 셈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도 세계에서 우리처럼 일 많이 하는 국민은 없다"는 식의 막연한
고정관념이 공휴일문제에 대한 냉정한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물론 지난 60~70년대 초기 산업화과정에 우리는 가장 근면한 민족 가운데
하나였음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80년대의 격렬한 노동운동기를 거치면서 한풀이식 "놀고 보자"는
풍조가 근로의욕을 크게 잠식해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젠 주5일 근무제를 제도화하고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하라는 요구가 올해 노사협상의 커다란 쟁점이 될것 같은
상황이다.

공휴일 수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현행 법정공휴일 19일은 경쟁 상대국인 홍콩(11일) 싱가포르(12일)
대만(17일)보다 많으며 선진국인 미국(8일) 프랑스(11일) 독일(12일) 일본
(13일)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다.

여기에 일요일, 기업내 공휴일, 휴가등 비근로일수를 모두 합치면 연간
노동 가능일수는 250일 정도로서 대만의 284일, 싱가포르의 295일, 홍콩
일본의 260일보다 적다.

현재 우리의 경제적 입지를 생각해 볼 때 과연 쉬는 날이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자문해보지 않을수 없다.

지금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3D 업종과 영세
제조업체들의 심각한 일손부족을 덜어주기 위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무릅쓰면서 금년내에 2만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추가 도입키로 정부가 단안을
내린 터이다.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되면 재택근무가 늘고 근로보다는 "삶의 질"을 중시
하는 풍조가 만연돼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될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럴 경우 외국인 근로자를 무턱대고 무한정 도입할 수도 없는 실정에서
노동력 부족을 메울 방법은 공휴일이나 연휴를 축소하는 길밖에 없다.

선진국의 예로 보아 경제성있는 휴식문화는 개인적으로 휴가가 분산될 때
정착될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전 국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꺼번에 며칠씩 쉬어야 한다면
그 부작용은 상당히 심각할수 있다.

이제 우리의 "휴일"제도도 단순히 쉬는 날 수를 늘려 주는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휴식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

쉬는 것도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가 필요해진 시대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