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도 앵앵과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장생으로서는 이번에 치르게 될 과거시험에 급제할 자신이 서지
않아 언제 앵앵을 보게 될지 기약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다시는 고향으로 내려오지 않으리라
속으로 굳게 결심하고 있는 터였다.

앵앵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거문고를 치우고는
잠자리를 폈다.

장생과 앵앵은 그렇게 눈물 속에서 안타깝게 서로의 몸을 애무하였다.

장생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앵앵을 다시 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앵앵은 이번이 마지막 포옹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생이 애무해주는 손길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져 몸이 쾌감
속으로 녹아들수록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끝도 없이 솟아나왔다.

다음날 새벽 장생은 앵앵의 방을 나와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장안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장생은 그해 과거시험에 떨어지고 다음 해 과거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떨어졌다.

그 동안 장생은 절치부심 공부에 진력하느라고 한번도 고향에 내려
가보지 못했다.

앵앵에게 마음을 굳게 먹고 있으라고 종종 편지를 띄워보내기는
하였으나, 과거에 연거푸 낙방하고 있는 처지라 당장 혼례를 치르자는
식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앵앵은 장생이 자기로 인하여 마음에 부담을 느끼면 공부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라 여겨져 이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던 대로 장생에게 절교의
뜻을 완곡한 표현 속에 담아 편지를 띄워보냈다.

그 편지에 이런 애절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도련님의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혼례를 치르지 못하였기에 저는
도련님의 아내라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일생의 불찰이기는 하나 도련님이 마음만으로라도 저를 아껴
주신다면 이 몸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도련님께서 나중에 부인을 맞으신 후 저에 대한 정을
잊으시고 저의 어리석음과 불찰을 비웃기라도 하신다면 비록 저의 몸은
죽어 없어질 망정 마음만은 여전히 살아서 바람과 이슬을 따라 먼지 속에
섞여서라도 도련님을 찾아뵙고 억울함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이 구절을 쓰면서 앵앵이 또 얼마나 흐느껴 울었겠는가.

장생 역시 이 편지를 받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장생의 친구들이 간곡한 마음으로 시를 써 장생을 위로해주려고도
하였지만 그 누가 장생의 쓰라린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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