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은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적어 홍랑 편에 앵앵에게
보내어도 앵앵의 반응은 여전하였다.

그러던 차에 장안에서 과거 시험 일자가 잡혔으니 속히 올라오라는
전갈이 왔다.

장생은 이번에는 앵앵을 꼭 만나보고 올라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홍랑에게 돈 열 냥을 안겨주고는 안에서 잠가놓은 앵앵의 방문 고리를
살짝 열어놓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다른 하녀들과 하인들을 딴 곳으로 따돌리도록 하였다.

홍랑은 원래 앵앵이 장생을 속으로는 몹시 그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장생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홍랑은 어떤 때는 앵앵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욕정을 못이겨 자기도
모르게 요염한 표정을 짓고 그러한 몸짓을 하는 것을 옆에서 훔쳐보고는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던 것이었다.

장안으로 올라가기 전날밤,드디어 장생은 앵앵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앵앵은 거문고를 쓰다듬고 있다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다.

장생은 앵앵 앞에 무릎을 끓고 앵앵의 두 다리를 감싸안았다.

"앵앵 낭자, 과거 시험 일자가 정해져서 내일 또 장안으로 올라가야
하오. 오늘 밤 나와 함께 지내주오. 제발 부탁이오. 왜 나를 자꾸만
멀리 하는 거요?"

장생은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이제 영영 이별이 되겠군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일 터이니 도련님의 부탁을 들어드리죠"

그러면서 앵앵은 차분하게 도로 앉았다.

"마지막 밤이라니요? 과거 시험을 보고 와서."

장생은 청혼을 하겠다는 말을 또 하려 했으나 앵앵이 손으로 장생의
입을 가리며 말을 못하게 막았다.

"오늘 밤만 저를 안고 즐기시고 가세요.

도련님도 나중에 가서 제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실 거예요"

앵앵은 눈물을 비치지 않으려 애쓰며 거문고를 다시 안았다.

장생은 앵앵을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몰라 그저 긴 한숨만 푸 내쉬었다.

"도련님은 이전에 오라버니로서 우리 집에 오실 적마다 제가 거문고를
잘 탄다고 칭찬을 해주셨지요.

그러면 저는 더욱 부끄러워져 거문고를 제대로 타지 못했는데, 오늘
밤은 온 정성을 다해 도련님을 위하여 거문고를 타드리겠어요.

"예상우의"라는 곡이에요"

"예상우의"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선인을 노래한
곡으로 황홀하면서도 애조를 띠고 있었다.

앵앵은 가락이 애조를 띠는 대목에 와서 참았던 눈물을 그만 쏟아놓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