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열 < 증권경제연구원장 >

모처럼 회복기미를 보이던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외국 증권사의 투자분석
보고서와 미국의 B.B율(반도체수급비율)이 최저 수준이란 외신보도가
나오면서 급냉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를 보면서 우리 증권시장도 상당히 세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케
한다.

특히 이들 악재는 우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반도체.통신관련
주가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주가 낙폭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미국의 메릴린치 증권사는 지난달 29일 올해 반도체산업의 공급과잉으로
수익성이 둔화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 소식이 일주일여 늦은 지난 6일 국내에 전달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재미있는 현상은 정작 그 보고서가 발표된 미국시장에서는 보고서 발표
이후에 반도체산업 관련주가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의 보고서와 관련, 그동안 몇차례 주가의 과민반응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관련 국내기업에 대한 국내 기관들의 분석이나 관련
기업이 발표한 수익성 전망에 의하면 결코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외국 관련 기관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대하여 과민 반응을 보인 것에서 국내 증권시장의 취약성을 읽을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일부에서 제기한 우리 증권시장의 사대주의 경향을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을 갖게 한다.

정보.통신시설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의 확산으로 자본시장의 세계화는
다른 어느 산업에서보다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그 폭이나 속도는 더욱
깊어지고 빨라질 전망이다.

만약 국내 주식시장의 특성이 주체성을 갖고 활용되지 못한다면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국내시장이 너무 취약하게 노출되고 말리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

아무리 세계화가 진전되어도 그 나라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자본시장의 제도가 국제적 기준에 접근하고
다국적 기업이 많아짐에 따라 한나라의 고유한 특징은 점점 줄어들 것이지만
한나라의 역사적 배경이나 환경적 관습의 영향을 받는 증권 분석가나 펀드
매니저의 행태는 어느 정도 각 나라의 고유성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시장을 지배하는 고유한 특성이 줄어들수록 자본시장의 세계화
진전은 우리시장의 예속화를 자초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작금의 현상에서 그러한 우려를 갖게 된다.

국내에서 발표한 재료의 가치는 시장에 별로 반영이 되지 않고 외국에서는
재료로서의 가치가 별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발표내용에 국내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시장의 장기발전을 위하여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증권회사를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의 분석능력의 한계를
드러내 놓은 것같아 걱정이 앞선다.

지금 국내 증권시장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일단이 여기에서 기인한지도
모른다.

작년 우리경제 성적표는 양호했다는 판정을 받을만 하다.

금년의 경제도 연착륙에 대한 우려감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70%대의 성장은 높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어서는 안될 상황을 다분히 비관적으로 해석
하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견해가 증권시장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는 외국에서 발표한 사소한 소식에도 국내증시는
큰 영향을 받게되어 있다.

국내 증시의 이러한 취약성을 극복하는 길은 증권회사를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분석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뿐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지금까지 수없이 강조되어 왔지만 아직도 갈길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WTO체제가 출범하고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게 된다.

우리의 증권관계기관들은 선진화된 외국의 유수한 회사들과 처절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우리만이 누릴수 있는 비교우위 기법이 없는 상태에서의 경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증권행정기조의 근원적인 전환을 통해서 증권관계기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의 근원을 제거해 줌으로써 우리 증권산업이 자생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심킬수 있는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투자자들도 해외에서 발표된 자료를 맹신하여 뇌동매매를 피하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는 투자관행을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리 우수한 외국의 분석가라도 국내경제 국내증권시장에 대해서는
우리 증권회사의 분석가 보다 반드시 나은 분석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투자자들은 가져야 한다.

또한 투자자들은 더 나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회사를 이용하고
그렇지 못한 회사를 외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때가 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