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수 맥진학회상임고문(70)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경찰공무원 농사꾼 막벌이노동 등을 전전,이제는 동양의학 연구가로
변신을 했다.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연구가가 아니라 동양의학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갖고 있다.

특히 맥박으로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진맥에 대해서는 "대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일본의 이부카 마사루 소니 명예회장의 주치의로도 활약, 국내
보다는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독일에서 침구학으로 명예 이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백고문은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뚜렷한 스승도 없었다.

그는 58년 전북대 법학과를 나와 경찰에 투신했다.

임실-순창경찰서장 등을 두루 거쳤으나 5.16직후 면직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때부터 인생유전이 시작됐다.

70년 한의학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 거의 10년간을 고향인 순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형님이 운영하는 광산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심지어 68년 서울로 올라와서는 공사판 막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70년 서울 용두동에서 생계의 수단으로 침술공부를 시작했다.

정확한 진맥을 위해 전자 맥진기도 개발했다.

백고문이 개발한 전자 맥진기는 국내및 일본 미국특허까지 따냈다.

그를 대전시 가장동에 있는 연구소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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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사의 이부카 마사루 회장과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요.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방학에서 고찰한 암의 원인규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이부카 회장은 심한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나 현대 의학으로는
원인규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이부카 회장이 몸소 나를 찾아왔지요.

정확한 진맥을 통해서만이 병을 치료할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당뇨는 체질에서 올수도 있고 음식섭취에서 걸릴수도 있는 등 발병
원인이 다양합니다.

이를 규명해야만이 양호한 처방을 내릴수 있습니다.

내 얘기를 듣고 이부카 회장이 정식으로 초대 했습니다"

-소니 회장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으셨다는데.

"공항에서부터 영접을 받았습니다.

공항에는 소니사의 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이부카 회장의 병치료는 둘째 문제였습니다.

당시 연구하던 전자 맥진기의 개발에 더 관심이 많았지요.

어떻게 하면 맥진기를 상품화하느냐가 내 관심사였습니다.

소니의 첨단부품을 이용해 전자 맥진기를 개발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맥진기를 개발하기 위해 청계천을 돌아다니고 능력이 있다는 사람들에게
선불을 주면서 개발을 의뢰했지만 시원치 않았습니다.

소니의 부품을 사용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부카 회장의 병세는 내 처방전으로 호전됐습니다.

맥진기도 소니와 공동개발키로 계약을 맺었지요.

기술을 이전할경우 8천8백만엔을 받기로 하고. 이부카씨는 회장직속으로
"맥진연구소"를 설립해주었습니다.

내가 연구소 고문을 맡았지요.

이 연구소는 전적으로 나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동안 연구한 맥진학과 음양오행 이론등 한방의료기술을 전수해주면서
매달 20여일씩 일본측 관계자와 연구활동을 벌였습니다.

연구조건은 최상이었습니다.

회사내의 어떤 정보도 열람할수있는 녹색카드를 지급 받았지요.

아마 소니가 외국인에게 그런 대접을 해주기는 처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끝에 91년 1차개발을 끝내고 그해 2월 이부카 회장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귀국했습니다"

-백고문님은 극일을 하신 셈이네요.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이같은 일이 왜 가능했다고 보십니까.

"동양의학은 중국에서는 중의학으로 불리고 한국에서는 한의학으로
불립니다.

뿌리 논쟁이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한 의학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의학은 실사구시 학문이었습니다.

조선조시대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 허준의 "동의보감" 등이 다 이에
속합니다.

하지만 일본에는 이같은 학문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의서를 일본이 훔쳐가 그들의 학문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면면히 흐르는 피를 가진 동일 민족만이 이를 이해할수 있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각종 의서가 일본과 대만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우리 한국사람은 조그만 관심과 연구를 하면 한의학에 정통할수가
있습니다"

-맥박으로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진맥은 동양의학의 기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명의라 해도 사람의 손으로 맥을 짚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옛날 궁중 어의가 먼 발치에서 실오라기로 맥을 짚는 장면을 TV에서
가끔 보긴 했습니다만....

"진맥은 일반적으로 3개의 손가락을 사용해 맥의 이상유무를 판별하는
것이지요.

맥을 짚는 사람의 감각적인 진단에 대한 오차를 피할수가 없습니다.

맥진기는 이같은 오차를 극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됐습니다.

사실 환자를 진료할때 병의 차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필요하고 환자도 수긍할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때문에 맥진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맥진기는 진동감지기와 기록계등 전자기술을 응용해 맥의 크기와 모양을
그래프로 표현해 병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피를 뽑거나 충격을 주지 않고 신체를 진단하는 유일한 기계지요.

인간신체의 순환계통을 전기회로로 생각한다면 심장이 전원이 되고
모든 조직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전등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전등이 모두 연결돼 있는 병렬회로가 맥입니다.

따라서 맥의 진단으로 신체 구석의 이상유무를 파악할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망문문절(얼굴을 보고 듣거나 묻고 짚는다)중 절에
속하는 것이 바로 맥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오장육부를 중심으로 연결된 신체정보를 쉽게 입수할수 있는 가장
보편화된 진단 방법이지요"

-맥진기를 개발한 뒤에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의학계에서 내 이론과 기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많은 공박을 받았지요.

그러다가 7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발명품 및 신기술 경진
대회에 기기를 출품해서 의료기기분야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한의학계에서는 저를 엉터리 의사라고 몰아붙여 경찰에 불려
다닌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정도 인식이 돼있습니다.

소니제품을 더욱 발전시켜 내이름을 붙인 "희수식 맥진기"가 국내에
약 1천대쯤 보급됐습니다.

미국 일본에도 10여대 나가 있습니다"

-국내 한의학계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겠네요.

"현재 전국에는 11개의 한의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방의 가장 기초인 진단학을 강의하는 교수나 과정이 따로
없습니다.

기초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체계적으로 진맥을 연구하는 학자도 없고 이분야 의서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분야에 대한 연구및 지원이 시급합니다.

다행히 최근들어 젊은 한의사를 중심으로한 개업 한의사들이 맥진의
중요성을 인식, 대한한의학회내에 맥진분과학회를 만들어 진맥의 과학화를
위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학회 회원은 약 2백명 정도로 주기적으로 모여 발표와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내 한의학도 세계화해야 됩니다.

국내에서 서로 헐뜯고 할 시간이 없습니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의학의 과학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한방에서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을 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현대인들은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비롯 동맥경화 등 내인성 질환이
많아요.

이러한 질환에 대해 양의에서는 신경성이니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붙이고있죠.그러나 한방적인 측면에서보면 분명히
질병이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와 혈의 흐름이 잘못 됐다거나 음양오행중 한곳이 모자랄때 병이
생기죠.

따라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만 병을 확실히 치료할수 있습니다"

-병에 걸리지않는 비결은 없습니까.

"우선 과욕을 부리지 않는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질병은 욕심에서 나와요.

음식도 과하면 병이되고, 운동도 과하면 병의 원인이 되지요.

중용지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체질이 있다고 봅니다.

여름에 태어난 사람과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체질은 같을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체질과 분수를 알아 중용을 지키는 것이 건강유지의 기본입니다.

나의 경우는 워낙 바빠서 병에 걸릴 틈이 없는것 같아요"

-연세가 적다고 할수 없는데 매우 건강하신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은.

"혈액의 흐름이나 농도가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 실험중인데 이제 어느정도 마무리돼 갑니다.

이것이 규명되면 인체 의학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대담 = 이기한 산업2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