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국토개발연구원장 >

서울은 특별시다.

지난 6백여년간 모든 면에서 서울은 우월적지위를 누려왔다.

우리 모두의 사고속에서 서울은 특별하다.

여기에 전 국민의 4분의1이 모여있고,국가의 모든 중추기능이 몰려있다.

정치, 행정 뿐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활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서울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서울은 해방 이듬해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 자유시가 되었고,
1949년 특별시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면서 타 도시와는 다른,한단계 더 자율적이고
우월적인 체계를 누려왔다.

그런데 민선시장 출범이후 더욱 독자성을 강조하는 서울특별법 제정이
논의되 고 있다.

지난 개발연대동안 서울은 여러가지로 특혜를 누려왔다.

각종 기반시설이나 편익시설이 아무래도 서울이 제일 앞서 갔다.

서울의 경계선만 벗어나면 지금도 특별시와 보통시의 차이가 확연하다.

지하철부채가 무겁다고는 하나 재정사정도 서울이 제일 여유가 있다.

그만큼 국가의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지방개발은 항상 뒷전이었고 구호뿐이었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특별시민 이 되고자 서울로 몰려왔던 것이다.

특별시란 허명이 인구의 서울집중에 큰 몫을 하였다.

사람들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여, 더 좋은 교육기회를 찾아서, 더 높은
삶의 질을 위하여 계속 서울로 왔다.

해방 당시 고작 90만에 불과하던 서울의 인구가 지금은 천만이 넘는다.

지금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한 도시의 집중도가 높은 나라는 지구촌에 오직 우리나라 뿐이다.

경제개발초기에 서울이 갖는 경제적 집중력은 성장의 견인차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집중문제가 국토개발의 커다란 짐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서울이 특별시의 명칭을 떼어버릴 때가 되었다.

민선으로 바뀐 지금 자치단체의 장이 장관급이냐 차관급이냐 하고 따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대개 어느 나라건 수도의 시장은 의전상의 특례를 받고 있을 뿐 그것이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특별히 달라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국가적을 볼 때 서울만의 특별지위를 강화하고 더구나 재정의 국가부담을
늘리면 부익부빈익빈이 될 것이다.

그만큼 도시간의 불균형은 심화될 것이다.

서울만의 독주는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국토개발의 기조는 서울집중 억제였다.

서울은 갖고 있는 기능의 상당 부분을 과감히 주변지역 또는 지방지역으로
분산시켜 나가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도 대도시의 인구감소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서울에도 이같은 인구의 유턴(u-turn)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서울이 모든 것을 행정구역안에 끌어 안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부터 모순
이다.

주택문제도, 교통문제도, 환경문제도, 물문제도, 도시기반시설 문제도 모두
광역적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행정구역을 조정할 수도 있다.

서울은 파리나 런던에 비하면 아주 크다.

그러나 도쿄나 뉴욕에 비하면 아주 작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다른 광역시나 시군통합시에 비하면 작다.

그렇다고 행정구역을 확대하는 것은 서울을 더욱 공룡화하는 꼴이 된다.

현재대로라면 서울의 모든 행정은 주변 지방정부와 한 울타리에서 해결
하여야 한다.

수평적 협조체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독자적인 자율성과 우월성만을 강조한다면 서울의 행정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는 대도시마다 독특한 형태의 광역행정 협의체라는 것이 있거나
카나다에는 연합자치제라는 것도 있다.

그만큼 복잡하고 힘들다.

서울은 이제 국토 전체의 차원에서 지방과 함께 발전해 나간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가령 수도권과밀부담금의 본래 개념은 인구과밀을 유발한데 따른 부담금을
징수하여 낙후된 지방발전에 쓰자는 것이었다.

이런 교차보조는 바로 국토전체와 서울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징수한 부담금을 왜 지방에 쓰냐는 논리에 밀려 본래의
취지가 퇴색한 것은 아타까운 일이다.

이제 서울은 특별시가 아니다.

일본도 특별시에 관한 규정을 1965년에 폐지하였고, 현재 23개구의 특별구
라는 명칭은 자치성격을 오히려 퇴색시킨 것이다.

다른나라에도 수도에 대한 자치의 특례를 인정하는 곳은 없다.

영국의 런던시가 특이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의전일 뿐이다.

미국의 워싱턴시도 독립 당시 대립되어 있던 남부와 북부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게 됨에 따라 연방 직속이 된 것 뿐이다.

이제 우리의 지방자치는 시작단계다.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자치행정을 펴는데 미흡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하루바삐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방정부간의 협력
관계를 바로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시정의 자율성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점진적으로 동시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제 서울은 특별시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6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