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원 구석구석은 보옥에게 시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춘야즉사운을 지을때 영감을 주었던 취연교나 소산, 운보석제,
난상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북쪽으로 난창으로 건너다 보이는 원정이니
철벽산장 같은 것들도 언제든지 시의 소재나 배경으로 끌어들이라는 듯이
그 정취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보옥은 대관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시를 지어
하인들이나 시녀들에게 선심을 쓰듯 던져주기도 하였다.

명연이라는 하인은 보옥이 지은 시들을 들고 대관원으로 바깥으로
나가 영국부나 녕국부의 권세에 아부하려는 자들에게 팔아먹었다.

"이 시들은 우리 보옥 도련님이 지은 시들이에요.

열다섯 살도 채 안 된 도련님이 이런 시를 지었으니 도련님은 하늘이
내리신 시재를 지니고 계신 게 틀림없어요.

자, 이 시를 한 번 베껴가는 데 두냥이에요"

이런 식으로 선전을 하자 가씨 가문에 잘 보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자들은 너도나도 보옥의 시를 베껴 벽이나 부채 같은 것에 옮겨 적어
놓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천하의 시성이 지은 시라도 되는 양 소리 내어 읊어보기도
하며, 과연 명작이로고, 제멋에 겨워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명연이나 다른 하인들을통하여 보옥에게 이러이러한
시를 하나 지어달라는 등, 글씨를 써달라는 등, 그림에 제목을 붙여
달라는 등 여러가지 부탁들을 해왔다.

그럴 적마다 돈이 생기고 하여 보옥은 부탁이 들어오는 대로 척척
시를 지어주고 글씨를 써주었다.

그렇게 생긴 돈은 자기 혼자 써는 것이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나누어
주곤 하였다.

사람들은 주로 연애시 같은 것을 부탁했는데,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은
지금이 봄인데도 가을밤을 노래한 시를 써달라고도 하였다.

아마 가을이 되면 써먹을 데가 있는 모양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보옥이 그런 부탁에도 응하여 봄날의 정원에 앉아
가을밤을 상상하며 시를 적어나간 사실이었다.

강운헌에 웃음소리 멎고 고요한데
푸른 달빛 붉은 휘장을 물들이네
이끼가 무늬 이룬 돌 위엔 두루미 잠들고
오동잎에 맺힌 이슬 갈가마귀 적시네
시녀는 봉황새 새겨진 이불 안고 와서 펴고
난간에 기대섰던 여인 돌아와 머리를 푸네
깊은 밤 주갈로 잠 못 이루다가 꺼진 화로
다시 헤쳐 찻물을 데우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