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가 세계화를 모든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겠다고 발표한지도 벌써
1년이 넘는다.

그렇다면 그간 최소한 한번쯤은 세계화시대의 경제정책이 그렇지 않은
시대의 정책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에 대해 짚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정책들과 주요 정책입안자의 말로 추리해
본다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세계화시대 경제정책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해 정부는 한나라의 자본-기술-
인력등 자원을 잘 활용하는 데에만 역점을 둘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외
자원을 최대한 유치하여 경제발전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자원을 유치하는데 있어서도 과거처럼 정부의 보조금 등을 통한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시장경제창달을 통한 간접방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외자원 유치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이유는 세계화시대
에는 경제활동에 관한 한 국경개념이 사실상 무의미하므로 거의 모든 생산
요소가 국제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화시대에는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함으로써 국내 기업환경이
좋게 되면 국외에서 많은 기술-자본-고급두뇌가 정부의 권유없이도 저절로
국내로 들어와 경제발전을 크게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시대에는 그 반대도 성립한다.

예컨대 국내정책이 잘못되거나 시장경제창달을 위한 개혁이 늦어지게 되어
국내의 기업환경이 나빠지면 외국의 기술 자본및 고급두뇌가 돌어오기는
커녕 국내에 있는 자본및 두뇌마저도 해외로 빠져 나가게 된다.

이렇게 볼때 세계화시대의 경제정책으로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국내의 기업환경을 다른 나라에 비해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위해 정부가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분야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우선 경제활동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철폐하는 일이다.

여기서 시대 착오적인 규제철폐를 강조하는 이유는 세계화 시대에는 경제
활동이 초국경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현재 있는 규제들은 거의 모두가
그러한 활동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규제는 우리 기업에 너무나 큰 부담이 된다.

이에 더하여 경제 활동이 초국경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국내외
기업간의 차별은 있을수 없는데 현재의 규제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외에도 정부가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이다.

과다한 규제와 더불어 국내의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하다면 해외로부터의
자본이나 기술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현재 우리 경제정책이 과연 얼마나 세계화시대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는가이다.

우리의 경제정책은 아직껏 해외 자본-기술및 고급 두뇌를 유치하는 데는
매우 미흡하다.

예컨대 국내 기업이 해외로부터 이자가 싼 자금을 도입하려면 우리 정부는
이것이 바로 국내 물가불안과 직결된다는 이유로 온갖 규제를 가하고 있다.

최근들어 정부는 향후 5년간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개방을 적극 추진
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간에 차별대우를 하는 조항들이 많이 남아 있다.

더욱이 물가가 조금이라도 급등하는 조짐이 보이면 정부는 거침없이 이것을
행정적으로 다스리려 한다.

그리고 국내 기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약 2년반에 걸쳐 약
1천4백여개의 경제규제를 철폐 또는 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효과가
피부에 와닿는다고 느끼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정부 규제과다로 인해 국내 기업환경이 오죽 나쁘면 우리의 많은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국내에서 하기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하겠다고 하겠는가.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공공재원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외국처럼 민간자본에 의한 투자 확대는 아직 큰 실적
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간접투자는 늘어나는 수요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볼때 세계화시대에 가장 걸맞게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은
오히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와 중국이 아닌가 하는 감마저
든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는 근년에 시장경제 창달을 위한 국내의 규제철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규모는 우리의 6분의1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91~94년간 무려 2백억달러가 넘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한데
비해 우리는 같은 기간중 46억달러 밖에 유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웃 중국만 해도 같은 기간동안 무려 8백20억달러의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현재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과연
한국이 21세기에 가서 태평양지역의 경제중심지가 될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