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문명 수준은 경제적인 부나 군사력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 인간대접을 받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다른 면에서 아무리 발달되고 강해도 인간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약자들이 설음과 억울함을 많이 당하는 나라는 후진국이요 야만국이다.

그런 기준은 사회의 문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교양수준에도
적용된다.

아무리 고등교육을 받고 돈이 많더라도 다른 사람의 인격과 구너리를 무시
하고 특히 약자를 깔아 뭉갠다면 결코 교양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런 기준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라도 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후진국에
속하고 교양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 할수 밖에 없다.

우리 인구의 10%에 달하는 장애인들이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푸대접과 설음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자에 대한 국가의 복지정책도 부끄러운 수준에 있고 장애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은 가히 야만적이라 할수 있다.

장애인 시설을 혐오시설처럼 싫어하고 무리를 지어 합법적인 건축공사를
방해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 우리 나라밖에 없다.

의무교육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애아동들의 20%밖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특히 자폐아의 경우는 겨우 5%밖에 의무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요한 이유는 특수학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교육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후진국에 속하게 되었다.

돈이 없어서 특수학교를 세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간의 존업성과 약자의 권리를 존중할줄 모르는 국민과 그 존재의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반성해 보지 않는 정부의 후진성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교육수준으로나 전국에서 제일 낫다는 서울에는 특수학교가
전국 평균보다 적으며 서울에서도 잘사는 사람이 가장 많은 강남구와
서초구에는 특수학교가 하나도 없다.

최근에 서울시 교육청이 일류로 알려진 모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키로
했다가 학부모와 동창들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그 동창생들 가운데 우리나라 각계 각층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청소년과 인권보호를 위해 일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분들이 주동이 되어 장애인 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다른학교에 특수반이 설치되는 것은 적극 지지하기 때문에
장애자를 위한다는 명분과 체면은 가졌다고 생각한다.

집단이기주의는 위선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항상 풍성하게 마련해 놓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렇게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 정부당국은 밀리기만 한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의 권리보호에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의 공권력이다.

사실 강자들에게는 정부가 필요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신들을 보호할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약자들이다.

그러므로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의의가 없다.

돈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강남구의 또다른 지역에도 자폐아동을 위한
사립 특수학교가 주민들의 방해로 건축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할 장애인 교육을 민간인들이 푼돈을 모아 대신 하려해도
공권력은 그것을 보호해 주기는 커녕 합법적인 건축공사를 방해하는 강자들
의 불법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장애자 교육에 관심이 없는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약자의 합법적인
권리도 보호하지 못하는 공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정부의 무관심이 시정되기 전에는 우리는
결코 선진국이 될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