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감 하충을 통하여 원춘의 지시사항을 들은 영국부는 대관원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각방을 청소하고 손질하느라 부산해졌다.

주렴과 휘장도 새로 치고 모기장과 침대도 새로 들여놓았다.

대관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자매들은 설레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보옥은 자기도 대관원으로 들어가는지 어떤지 잘 알지 못하여
대부인에게 가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부인이 보옥이도 대관원에 들어간다고 대답해 주었다.

보옥은 뛸 듯이 기뻐하며 자기는 이홍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 침대 모양은 이런 걸로 해달라느니, 액자 그림은 이런 걸로 걸어
달라느니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 가정이 허락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자매들이 들어가는 대관원에 보옥이 들어가는 것을 아버지는 싫어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었다.

아무리 후비 원춘 누나의 지시요 대부인의 허락 사항이라고는 하지만
아버지 가정이 마음만 먹는다면 후비와 대부인의 마음도 바꾸어 놓을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발 그런 상황이 벌이지지 않기를 보옥이 속으로 빌고 있는데,
하녀가 달려와서 아버지 가정이 부른다는 전갈을 전하였다.

혹시 너는 대관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부르는 건
아닐까.

보옥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정이 거처하고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하녀들이 문 밖 처마 밑에 주르르 서있는 것이 아닌가.

"왜 너희들 나와 있니?"

보옥이 주눅이 든 목소리로 채하라는 하녀에게 물어보았다.

"대감님께서 마님이랑 무슨 의논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우리가 들어서는 안 될 일인 모양이지요"

무슨 중요한 의논일까.

보옥은 더욱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금천아라는 하녀가 보옥의 소매를 슬그머니 당기더니 집
모퉁이를 돌아갔다.

무슨 비밀이라도 알려줄 것인가 하고 보옥이 따라갔는데, 금천아는
문득 멈춰 서더니 얼굴을 보옥에게로 돌리며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 계집애가 왜 이러나.

보옥이 당황해 하며 약간 뒤로 물러났다.

"도련님, 내 입술에 방금 향기가 기가 막힌 연지를 발랐거든요.

한번 연지를 빨아 먹어보세요.

도련님은 그 향기에 취하고 말 거예요"

이 계집애가 내가 입술연지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습인이나 사월이 하녀들에게 소문을 다 낸 것인지도 몰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