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가화만사성)는 옛 말이 있다.

단결과 고통분담을 통한 위기극복을 강조하는 뜻이다.

오는 2000년까지 실질임금을 현 수준으로 묶는 대신 실업률을 지금의
절반수준으로 낮추기로 한 독일 정부및 노사대표의 합의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그만큼 독일경제의 위기의식이 높다는 뜻도 된다.

한때 "유럽경제의 기관차"로,"세계경제의 모범생"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독일경제는 지금 낮은 경제성장, 재정적자 팽창, 기록적으로 높은 실업률등
어두운 그늘에 싸여 있다.

지난 93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94년에는 2.9%의 높은 경제성장을
한것도 잠시뿐 지난해의 성장률은 2%에도 못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에도 성장전망이 밝지 않으며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올해 성장률전망을
1% 안팎으로 낮춰잡고 있다.

이처럼 경제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세수가 줄고 실업수당 등 사회복지
지출이 늘어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예상과는 달리 국내총생산(GDP)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3.6%로 유럽 통화통합의 참여기준인 3.0%를 웃돌아 유럽 통화통합의
추진일정마저 불투명해졌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실업문제로 실업률이 5개월째 계속 증가해 지난해말
현재 9.9%에 달했으며 실업자 수는 379만명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같은 고용사정 악화가 일시적인 경기순환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점이다.

하나는 독일통일 이후 과거 동독지역의 생산성향상, 실업해소 등을 위해
재정지출이 늘어났고 인플레억제를 위해 고금리정책을 쓰다보니 외자유입
으로 마르크화가 고평가되어 기업들의 산업경쟁력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임금이 지나치게 높고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이 무거워 투자를
꺼리고 독일기업의 해외 이전을 촉발했다는 점이다.

지난 90년 이후 해외투자로 인한 일자리 손실이 30만개에 이른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로 이같은 상황인식과 위기의식이 이번에 고용안정 합의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지난해 11월 독일의 최대 노조인 금속노련이 고용안정방안을 제의했을때
사용자측은 회의적이었으나 정부가 적극 지지해 합의가 성사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낮추고 기업의 세부담을 경감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합의가 필요하다는
독일정부의 인식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산업별 노조와 해당 기업들간의 협의를 지켜봐야
겠지만 합의자체 만으로도 독일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노사공영의 오랜
전통을 확인해줘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독일의 노-사-정 합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경기연착륙에 대한 불안이나 정국불투명,그리고 북한지원 여부에 이르기
까지 해결책은 노사합의를 바탕으로한 경쟁력강화, 이를 통한 경제력배양
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총선과 노사협상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이같은 합의가 절실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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